서울 강남구 경운박물관에서 전시('갖옷, 겨울을 건너다') 중인 조선시대 썼던 난모들. 출처 경운박물관 홈페이지


조선의 갓이 'K모자'라는 명성을 떨치기 훨씬 전부터, 한국은 모자의 나라였다. 의관정제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듯 남자는 모름지기 갓을 써야 옷을 갖춰 입었다고 여겼다. 특히 겨울엔 남녀 모두 다양한 종류의 난모(방한모)를 썼는데, 귀를 덮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형태는 지금 유행하는 바라클라바와 흡사하다. 선조들이 모자를 즐겨 쓴 건 멋도 멋이지만 더울 때는 햇빛을 가리고 추울 때는 열 손실을 막는 백경게임 실용적 이유가 컸다. 체온 유지에 머리 보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머리는 차게 하고 아래는 따뜻하게 하라'는 한의학 지식에 따라 방한모 대부분 머리 위쪽이 뚫려 있는 것도 한국 모자만의 특징이다.
계량적 수치나 통계에 근거한 과학은 아니나 생활 속 지혜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이재열 경북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는 신간 릴게임몰메가 '살림의 과학'에서 과학과 풍습 사이를 오가며 옛사람들의 살림살이 속에 숨겨진 멋과 지혜를 탐구한다. 병풍, 반닫이, 베갯모, 맷돌, 둠벙, 석빙고 등이 대상이다. 저자는 환경 미생물학자인 동시에 오랜 시간 전통 문화와 과학, 문화재를 깊이 연구해 왔다. 2013년엔 수십 년간 수집한 백제, 신라, 가야의 고대 토기 157점을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 기부했 릴게임몰메가 을 만큼 취미를 넘어 전문적 식견을 자랑한다. 이번 책은 2009년 출간한 스테디셀러, 한국 전통 문화에 담긴 과학적 지혜를 다룬 책 '담장 속의 과학' 후속편 격이다.



1919년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판화 작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난모를 쓴 사람들. 출처 국립민속박물 야마토게임연타 관



세계 최초 온실부터 옹기까지...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 등장한 조선시대 온실. tvN 캡처


당대의 생활 과학 바다이야기APK 수준은 '농장에서 식탁까지'로 대변되는 농업·식량 문화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조선 세조 때인 1459년, 어의 전순의는 요리법과 농축산 기술을 정리한 책 '산가요록(山家要錄)'에서 한겨울에 채소를 기를 수 있는 온실 재배법을 소개한다. 삼면은 담을 쌓고 양지 바른 남쪽엔 기름 바른 종이로 전면 창을 내는 게 골자다. 바닥엔 온돌을 깔았고, 담 밖에 솥을 걸고 불을 땐 뒤 여기서 나오는 수증기를 관으로 연결해 실내로 들였다. 세계 최초라고 알려진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보다 170년 앞선 기술이었다.
숨 쉬는 항아리, 옹기를 하나 만들면서도 기후 조건을 따졌다. 춥고 건조한 기후인 북쪽 옹기는 햇빛을 잘 받도록 옹기 입을 넓게, 덥고 습한 기후인 남쪽 옹기는 옹기 입을 좁게 만들었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쓰이는 옹기일수록 내용물의 부패와 벌레가 끼는 것을 막고자 뚜껑을 깊게 만들고 잘 맞물리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 이렇게 잘 만든 옹기는 장과 김치 등 한국에 발효 음식 문화가 꽃피우는 뿌리가 됐다. 술밥을 물과 함께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키는 기간도 계절 따라 달리 적용했다. 온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일주일 정도지만 봄과 가을에는 이보다 오래, 추운 겨울에는 보름을 넘겨 발효시키는 식이었다.



충남 예산의 '대흥동헌' 옆 뜨락에 옹기가 가득 놓여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생물도, 살림살이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
흔히들 한국 음식 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손맛'이나 '눈대중'을 꼽는다. 계량된 레시피를 바탕으로 하는 서구 음식 문화에 비해 비과학적으로 비춰지기 쉽다. 그러나 조상들은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세심한 차이를 인식하고 이에 따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활 방식을 추구했다. 사소한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집에서 술밥과 누룩을 버무리며 술을 담글 때 겹쳐 접은 창호지를 입에 물도록 했다. 부지불식간에 말을 하거나 기침을 해서 침방울이 식재료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입에 문 창호지가 일종의 위생 마스크 역할을 한 것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부족한 살림 속에서도 넉넉한 마음을 누릴 수 있는 '살림의 지혜'를 추구해 온 것이 바로 우리 문화의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현미경을 통해 미생물을 바라보듯, 작지만 중요한 살림살이를 살뜰하게 살피는 애정 어린 시선이 돋보인다.



살림의 과학·이재열 지음·사이언스북스 발행·532쪽·3만3,000원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