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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xx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 넉 줄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가 미리 써둔 자신의 묘비명이다. 하루키는 스스로를 작가이자 러너로 규정한다. 글쓰기와 달리기를 나란히 놓고 생각한다. 그 사유를 담아 에세이를 썼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제목의 수필집으로 냈다. 이 묘비명도 이 책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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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1Q84' 등의 저자인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러닝 애호가로 유명하다. [사진=무라카미 하루키 페이스북]


마라톤에 이처럼 진심인 하루키이니, 당연히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했겠지?
이 에세이집황금성검증
에 러너스 하이와 가깝게 해석되는 대목이 있다. 하루키는 "그냥 달린다"며 "나는 공허의 상태 속에서 뛴다"고 들려준다. 이어 "아니, 다시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면서 "나는 공허를 얻기 위해 달린다"고 말한다.
러너스 하이는 명상에 몰입한 상태에서 느끼는 고요한 상태다. 이에 비추어 하루키가 표현한 '공허의 상태'는 러너스 하이의 일코스닥추천
종일 수 있다는 기대를 일으킨다. (스포츠 박사인 한 기자는 '왜 '러너스 하이'라고 말할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렇게 풀이했다.)
그러나 그 다음 표현이 이 기대를 깬다. 하루키는 "그런데 예상하듯이, 가끔씩 생각 하나가 이 공허 속으로 스며든다"고 털어놓는다. 무슨 생각인가? "아무 의미 없는 잡다한 생각들" "대부분은 집에 돌아가면 알라딘사이트
뭘 먹을까, 돌아오는 길에 잡지를 하나 살까, 내일은 제시간에 출근해야 하는데" 같은 잡념들이다.
하루키의 '공허와 잡념'은 러너스 하이가 아니다
러너스 하이는 잡념이 꼬리를 무는 상태가 아니라 무념무상의 경지다. 가장 큰 특징은 평안함이 정신뿐 아니라 동시에 몸에도 스며든다는 것이다. 팔과 다리, 몸이, 마치 추진력을 WTS
얻은 열차가 궤도 위를 활주하는 것처럼, 아무 힘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동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하루키는 이런 신체 상태로 접어드는 경험을 들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하루키는 누구보다 성실한 러너이긴 하지만, 러너스 하이는 맛보지 못했다고 나는 추정한다.
《도덕경》은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고 주장한다.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이미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 가르침의 연장선에서 이렇게 반문할 독자가 계시리라. "좋으면 됐지, 표현을 놓고 꼬치꼬치 따지면 무슨 이득이 있나?"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적확한 언어로 나타내지 않은 상태는 결코 온전히 전해질 수 없다."
엔도르핀, 도파민, 엔도카나비노이드 중 무엇이?
생각해보라. 이전 스마트폰에서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으로 데이터를 넘기는 데 필요한 것은 케이블과 소프트웨어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이 경험한 어떤 상태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주요 수단은 언어다. (자신의 느낌을 영상으로 제작해 공유하는 사람은 영화 제작진 외에는 없다.) 한 상태를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전하려면 알맞은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신경전달물질을 가리키는 용어는 러너스 하이에 대한 인식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흔히 엔도르핀을 러너스 하이와 결부한다. 도파민도 관련이 있다고들 한다. 여기에 더해 인용되는 물질이 엔도카나비노이드.
각각을 간단히 설명한다. 엔도르핀은 뇌에서 생성됨을 나타내는 접두사 endo와 모르핀을 조합한 명칭이다. 아편의 주성분인 모르핀은 심한 통증을 없애면서 황홀함을 선사한다. 엔도르핀의 효과도 모르핀과 비슷하다. 도파민은 에너지와 의욕, 동기부여, 흥미 등을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엔도카나비노이드는 대마(Cannabis sativa L.)처럼 걱정과 불안을 날리면서 마음에 안정을 준다. '엔도'는 방금 설명했다. 한편 마리화나는 말린 대마의 잎이나 꽃을 가리킨다.



러너스 하이는 잡념이 꼬리를 무는 상태가 아니라 무념무상의 경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거에는 러너스 하이가 엔도르핀 단독 작용으로 설명됐다. 그러나 엔도르핀은 힘든 운동 뒤에 분비되고, 러너스 하이의 필요조건에 고통이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 설명은 기각된다. 스포츠 심리학자와 스포츠 의학자가 쓴 《나를 향해 달린다》가 일찌감치 이 설명을 반박한 바 있다. 도파민은 평정심과 반대편에 가까운 효과를 낸다. 따라서 러너스 하이와는 거리가 멀다.
러너스 하이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물질이 엔도카나비노이드다. 뇌과학 박사가 쓴 《운동의 뇌과학》은 엔도르핀과 엔도카나비노이드가 함께 작용하면 강한 행복감을 선사한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엔도르핀은 고강도 운동 때 나오고, 엔도카나비노이드는 저강도로 오래 운동할 때 분비된다"며 "천천히 오래 달리기를 하면 두 물질이 함께 나온다"고 설명한다. 과학 저술가가 쓴 《브레인 케미스트리》는 "두 물질이 서로 분비를 촉진하는 되먹임 고리를 형성한다"고 전한다.
비유하면, 러너스 하이는 엔도카나비노이드가 이끌고 엔도르핀이 밀어주면서 나타난다.
하루키는 에세이집에서 달리기의 의미를 이렇게 들려준다.
"달리기는 내가 이제까지의 인생을 사는 가운데 후천적으로 익혔던 몇 가지 습관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생각된다. 수년간 끊임없이 달리는 것으로 내 신체와 정신은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강화되고 형성되어 왔다."
달리기는 좋다. 신체와 정신 모두를 건강하게 한다. 일단 달려보자. 설령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뛰다 보면 불현듯 러너스 하이가 당신을 찾아올 수 있다.



백우진 칼럼니스트 (smitten@korme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