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항해, 비아그라와 함께 완벽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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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성규수 작성일26-01-31 21:14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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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항해, 비아그라와 함께 완벽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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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eastorygame.top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겠다던 사내들의 허리띠는 느슨해졌다. “돈 벌어서 금방 돌아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의 얼굴도 날이 갈수록 흐릿해졌다. 머리 속에는 성적 욕망이 그득해서, 그들은 밤마다 욕정에 몸부림쳤다.
사무치는 이 외로움을 달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좋았다. 피부가 검고 얼굴이 납작하다 하여 ‘야만인’이라 불렀던 여인들을 탐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정결하라”는 신의 말씀을 등지고, 그들은 결국 이방의 여인들과 몸을 섞었다.
릴게임 “저기 하얀 남자들, 왜 이렇게 쳐다보지...” 찰스 마리온 러셀의 작품.
한 사내의 하룻밤 이야기가 다른 사내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너도나도 ‘야만인’들과 관계를 맺었다. 사흘, 나흘간의 불장난은 며칠 만에 활활 타올랐고, 그들은 어느덧 어엿한 부부의 모습 백경게임 을 갖춰갔다. 이 수많은 커플 중 하나가 존 롤프와 ‘포카혼타스‘였다.
디즈니의 동화보다는 ‘치정’에 가까웠던 이들의 사랑은, 경제사(史)라는 거목의 든든한 밑동이 되었다. 정착민과 현지처의 결합으로 정착민들이 세운 ‘버지니아 주식회사‘의 사업이 안정 궤도에 들어선 덕분이었다.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미국의 뿌리이자 줄기 릴게임사이트 였다. 그들의 의사결정이 훗날 미국 의회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의 한 장면. [사진출처=디즈니]
스페인의 중남미 지배, 배가 아픈 잉글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랜드
1606년, 잉글랜드는 배가 아팠다. 이웃 나라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장악하고 있어서였다. 잉카와 아즈텍에서 약탈한 금과 은은 모두 스페인의 차지였다.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는 축복이 옆 나라에만 주어지는 박탈감에 잉글랜드는 속이 쓰렸다.
벌써 몇 번이나 식민지 건설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쪽박 골드몽사이트 을 찼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아메리카 땅 한 마지기에라도 ‘성 조지 깃발(잉글랜드 국기)’을 꽂는 것만이 쓰린 속을 달래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노 페인 노 게인, 스페인은 예스 게인.” 아스텍을 무너뜨린 에르난 코르테스.
잉글랜드 제임스 1세 왕실은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해 제 돈으로 탐사대를 꾸릴 배포가 없었다. 탐사선이 좌초하거나 빈털터리로 돌아오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제임스는 진저리를 쳤다.
왕실이 직접 탐사대를 꾸리는 대신 민간 회사에 ‘칙허장’을 내준 배경이었다. 높은 리스크는 회사에 떠넘기고, 왕실은 영토 확보와 안정적인 세금만 챙기겠다는 전략이었다. 바로 ‘버지니아 주식회사(The Virginia Company of London)’의 탄생 배경이었다.
“나라님이 못할 일, 상인들은 할 수 있지.” 버지니아 주식회사의 문장.
아메리카 투자 열풍이 불다
지긋지긋한 섬나라를 벗어나 광활한 대륙에 내 땅을 차지한다는 ‘국뽕’이 차오르자, 버지니아 주식회사에 돈을 대겠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귀족, 상인, 성직자, 그리고 농민들까지 나섰다. 물론 애국심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기대한 건 이교도의 땅에서 흘러들어 올 막대한 배당금이었다.
1607년 5월, 104명의 사내가 마침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땅을 밟았다. 이 모든 게 신과 제임스 전하의 뜻이라는 의미에서 마을에는 ‘제임스타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버지니아 주식회사’라는 간판에서 광휘가 났다.
초기 제임스타운 교회 유적. [사진출처=토니피셔]
잉글랜드 시민들이 대박의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정작 제임스타운의 정착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낮에는 모기가 들끓었고, 밤에는 원주민들이 마을을 기웃거렸다. 스페인이 발견했다던 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대가뭄이 찾아와 농지에 물을 대기도 버거웠다. 살이 짓무르고 뼈가 부서져라 일해도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체 높은 집안 출신인 정착민들은 좀처럼 노동하려 하지 않았다.
“정말 사람이 끊임없이 죽어가는구나.” 대설을 맞아 눈에 사람을 묻는 제임스타운의 사람들.
“나는 결코 죽지 않아”…애연가 존 롤프의 목숨을 건 밀수
사람의 도시인지 시체들의 무덤인지 아리송했던 제임스타운에 1610년, 한 사내가 발을 디뎠다. ‘존 롤프’였다. 영국에서 배를 탔다가 풍랑에 난파되어 버뮤다에서 표류하다 돌아온, 그야말로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내였다.
존 롤프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숨 쉬듯 담배를 피워 댔다. 그가 제임스타운의 미래가 ‘담배 산업‘에 있다고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담배는 유럽 귀족들이 열광하는 기호품이었고, 그들에겐 돈이 많았으니까. 존 롤프는 갈색 담뱃잎에서 ‘브라운 골드’를 보았다. 그러나 북미의 토종 담배는 성에 차지 않았다. 떫고 독해서 애연가인 그조차 기침을 해댈 정도였다. 스페인이 중남미에서 재배해 유럽에 뿌리는 담배와는 질이 달랐다.
“남미산 돗대는, 천상의 맛이지...” 담배 를태우는 월터 롤리 경.
거대한 파도도 자신을 죽이지 못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롤프는 배를 타고 남미로 향했다. 스페인 제국이 지배하는 트리니다드와 카라카스(현 베네수엘라)였다. 스페인은 종자 유출을 사형으로 다스리고 있었지만, 롤프는 주눅 들지 않았다. 남미산 담배가 없다면 어차피 버지니아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가만히 앉아 죽느니 발버둥이라도 쳐보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1612년, 제임스타운으로 돌아온 그의 배는 담뱃잎으로 가득했다. ‘밀수’의 성공이었다. 남미산 담뱃잎이 제공하는 강렬한 달콤함에 정착민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임스타운에 볕이 들기 시작했다.
1874년에 그려진 롤프의 담배 재배 모습.
땅을 확장해나가다
“우리에게 새 땅이 필요합니다.”
남미산 담배는 그 달콤함만큼이나 땅의 영양분을 탐욕스럽게 요구했다. 매일 젖을 달라고 보채는 담배를 땅은 오래 품지 못했다. 2년만 경작하면 땅은 메말라 버렸다. 금이 되는 담배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정착민들은 나무를 베고 습지를 메워 땅을 넓혀나갔다.
식민지의 덩치가 커질수록 원주민 파우하탄족의 불안도 커졌다. 갈등은 결국 ‘납치극’으로 폭발했다. 영국 선장 새뮤얼 아르갈이 파우하탄족과의 전투 중 추장의 딸을 납치했다. 바로 ‘포카혼타스‘였다. 그녀를 인질 삼아 영국인 포로들과 맞교환할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함이었다.
“글쎄 포카혼타스가 납치가 됐다네요...” 포카혼타스의 납치를 묘사한 그림.
희멀건 얼굴의 사내들 사이에서 가무스름한 피부의 포카혼타스는 단연 눈에 띄었다. 그녀는 포로 같지 않았다. 새로운 문명을 신기해하며 맑은 눈으로 그 질서를 흡수했다. 영어는 물론 기독교까지 받아들였다. 갈색 담뱃잎으로 큰 돈을 번 존 롤프는 갈색 피부의 포카혼타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며칠 지나지 않아 롤프는 청혼했다. “그녀와 결혼해 파우하탄족과의 평화를 일구겠다”고 포장했지만, 그 이면엔 짙은 욕망이 깔려 있었다.
“포카혼타스는 이제 하나님의 어여쁜 양이니라...” 세례를 받는 포카혼타스.
길고 고된 전쟁에 지친 파우하탄 추장은 이 결혼을 승인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상호 불가침 조약과 같았다. 영웅 존 롤프가 이교도와 결혼했다는 소식에 제임스타운의 사내들도 들떴다. 이제 이교도 여성들과 얼마든지 관계를 맺어도 된다는 면죄부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평소 눈여겨보던 원주민 여성들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졌다. 제임스타운은 그렇게 갈색 가을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래, 나에게 장가를 오고 싶다고...?” 찰스 러셀이 묘사한 원주민 여성.
승승장구, 버지니아 주식회사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평화 속에 만개했다. 회사가 담배 농사를 위해 새 땅이 필요하다고 하면, 파우하탄족은 “사돈지간에 못 할 일이 무엇이냐”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1614년부터 1622년까지 담배 수확량은 폭증했고, 회사의 몸집은 거대해졌다. ‘포카혼타스의 평화’ 덕분이었다.
존 롤프는 이 결혼을 철저히 ‘마케팅’으로 활용했다. 아내를 데리고 런던 왕실을 찾은 것이다. 잉글랜드 귀족 드레스를 입은 까무스름한 여인은 경이로운 구경거리였다. 제임스 1세와 신하들은 연신 “할렐루야”를 외쳤다. 소문은 런던 사교계를 넘어 금융가와 저잣거리까지 퍼졌고, 너도나도 투자하겠다며 아우성쳤다. 존 롤프의 완벽한 기업설명회(IR)였다. 런던 여정이 고단했는지, 포카혼타스는 귀국길에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전하의 위엄으로, 이교도의 땅에 기독교가 뿌리 내렸습니다.” 포카혼타스를 소개받는 제임스1세.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단순한 회사가 아니었다. 그 자체가 식민지였고, 문화이자 경제이며 정치였다. 커진 존재감을 바탕으로 그들은 ‘버제스 오브 하우스(House of Burgesses)’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정착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만드는 집단, 즉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의회‘였다. 버지니아 의회의 탄생은 정치 혁명가가 아닌, 이익을 좇던 기업인들이 쌓아 올린 탑이었다.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영원히 빛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착민과 원주민을 잇던 ‘포카혼타스’라는 끈이 끊어지자 연대감도 사라졌다. 원주민들은 담배 농사에 혈안이 된 흰둥이들이 얄미웠고, 정착민은 자연을 신처럼 받드는 야만인들을 얕잡아봤다.
“우리 쇼윈도 부부 아니예요.” 포카혼타스와 존 롤프의 결혼.
대학살의 시작
1622년 3월은 평화로웠다. 햇빛이 쨍해 축일로 더할 나위 없던 날, 원주민들은 그간의 오해를 풀자며 사슴고기와 생선을 잔뜩 가져왔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바로 그때, 원주민들은 바지춤에서 도끼와 괭이를 꺼내 들었다. ‘흰둥이‘들의 머리와 어깨를 무차별적으로 찍어댔다.
이날 하루 버지니아에서 347명이 살육당했다.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이었다. 더 이상 담배를 생산할 여력이 없어진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파산했고, 2년 후 제임스 1세는 버지니아를 왕령 식민지로 전환했다.
“맛좀봐라 이 흰둥이 놈들아.” 인디언의 공격을 받는 백인 정착민들.
사적 기업에서 왕령으로 외피는 바뀌었으나, 도시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 ‘의회’가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주식회사의 적자(嫡子)가 바로 버지니아 의회였던 셈.
100년이 훌쩍 지난 후, 식민 모국 대영제국에 맞서 미국 독립 선언을 주도한 곳은 버지니아였다. 미국 헌법의 꽃이라 불리는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버지니아 권리장전’에서 그 얼개를 따왔다. 오늘날 미국이 여전히 세계 경제 질서를 주도하는 건, 태생적으로 경제인의 차가운 합리성 위에 세워진 국가여서가 아닐지.
“버지니아의 위대한 반대가, 미국 독립의 초석을 낳을 것이오.” 버지니아 의회의 결의안 연설.
미국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놓인 포카혼타스 동상. [사진출처=Blueberrythefish]
<네줄요약>
ㅇ스페인이 중남미를 개척하자, 영국은 ‘버지니아 주식회사’를 세워 미 대륙 식민지 건설에 나섰다.
ㅇ기근으로 애를 먹었으나, 존 롤프가 등장해 담배 농사로 대박을 쳤다.
ㅇ존 롤프는 원주민 포카혼타스와 결혼해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운영해 나갔다.
ㅇ포카혼타스 사망 뒤,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사라졌지만, 그 뒤를 버지니아 의회가 계승해 나갔다.
‘경제’는 맛보기에 어려운 식재료입니다. 채권, 이자, 화폐라는 단어만 들어도 쓴맛이 올라옵니다. 맛있게 즐기려면 ‘역사’라는 양념이 필요합니다. 역사(히스토리)와 경제(이코노미)를 결합한 연재물 ‘히코노미’는 먹음직한 요리를 내는 걸 목표로 합니다. 기자 구독을 눌러주세요. 격주로 여러분의 경제 근육을 키워드리겠습니다.
사무치는 이 외로움을 달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좋았다. 피부가 검고 얼굴이 납작하다 하여 ‘야만인’이라 불렀던 여인들을 탐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정결하라”는 신의 말씀을 등지고, 그들은 결국 이방의 여인들과 몸을 섞었다.
릴게임 “저기 하얀 남자들, 왜 이렇게 쳐다보지...” 찰스 마리온 러셀의 작품.
한 사내의 하룻밤 이야기가 다른 사내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너도나도 ‘야만인’들과 관계를 맺었다. 사흘, 나흘간의 불장난은 며칠 만에 활활 타올랐고, 그들은 어느덧 어엿한 부부의 모습 백경게임 을 갖춰갔다. 이 수많은 커플 중 하나가 존 롤프와 ‘포카혼타스‘였다.
디즈니의 동화보다는 ‘치정’에 가까웠던 이들의 사랑은, 경제사(史)라는 거목의 든든한 밑동이 되었다. 정착민과 현지처의 결합으로 정착민들이 세운 ‘버지니아 주식회사‘의 사업이 안정 궤도에 들어선 덕분이었다.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미국의 뿌리이자 줄기 릴게임사이트 였다. 그들의 의사결정이 훗날 미국 의회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의 한 장면. [사진출처=디즈니]
스페인의 중남미 지배, 배가 아픈 잉글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랜드
1606년, 잉글랜드는 배가 아팠다. 이웃 나라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장악하고 있어서였다. 잉카와 아즈텍에서 약탈한 금과 은은 모두 스페인의 차지였다.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는 축복이 옆 나라에만 주어지는 박탈감에 잉글랜드는 속이 쓰렸다.
벌써 몇 번이나 식민지 건설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쪽박 골드몽사이트 을 찼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아메리카 땅 한 마지기에라도 ‘성 조지 깃발(잉글랜드 국기)’을 꽂는 것만이 쓰린 속을 달래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노 페인 노 게인, 스페인은 예스 게인.” 아스텍을 무너뜨린 에르난 코르테스.
잉글랜드 제임스 1세 왕실은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해 제 돈으로 탐사대를 꾸릴 배포가 없었다. 탐사선이 좌초하거나 빈털터리로 돌아오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제임스는 진저리를 쳤다.
왕실이 직접 탐사대를 꾸리는 대신 민간 회사에 ‘칙허장’을 내준 배경이었다. 높은 리스크는 회사에 떠넘기고, 왕실은 영토 확보와 안정적인 세금만 챙기겠다는 전략이었다. 바로 ‘버지니아 주식회사(The Virginia Company of London)’의 탄생 배경이었다.
“나라님이 못할 일, 상인들은 할 수 있지.” 버지니아 주식회사의 문장.
아메리카 투자 열풍이 불다
지긋지긋한 섬나라를 벗어나 광활한 대륙에 내 땅을 차지한다는 ‘국뽕’이 차오르자, 버지니아 주식회사에 돈을 대겠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귀족, 상인, 성직자, 그리고 농민들까지 나섰다. 물론 애국심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기대한 건 이교도의 땅에서 흘러들어 올 막대한 배당금이었다.
1607년 5월, 104명의 사내가 마침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땅을 밟았다. 이 모든 게 신과 제임스 전하의 뜻이라는 의미에서 마을에는 ‘제임스타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버지니아 주식회사’라는 간판에서 광휘가 났다.
초기 제임스타운 교회 유적. [사진출처=토니피셔]
잉글랜드 시민들이 대박의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정작 제임스타운의 정착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낮에는 모기가 들끓었고, 밤에는 원주민들이 마을을 기웃거렸다. 스페인이 발견했다던 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대가뭄이 찾아와 농지에 물을 대기도 버거웠다. 살이 짓무르고 뼈가 부서져라 일해도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체 높은 집안 출신인 정착민들은 좀처럼 노동하려 하지 않았다.
“정말 사람이 끊임없이 죽어가는구나.” 대설을 맞아 눈에 사람을 묻는 제임스타운의 사람들.
“나는 결코 죽지 않아”…애연가 존 롤프의 목숨을 건 밀수
사람의 도시인지 시체들의 무덤인지 아리송했던 제임스타운에 1610년, 한 사내가 발을 디뎠다. ‘존 롤프’였다. 영국에서 배를 탔다가 풍랑에 난파되어 버뮤다에서 표류하다 돌아온, 그야말로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내였다.
존 롤프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숨 쉬듯 담배를 피워 댔다. 그가 제임스타운의 미래가 ‘담배 산업‘에 있다고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담배는 유럽 귀족들이 열광하는 기호품이었고, 그들에겐 돈이 많았으니까. 존 롤프는 갈색 담뱃잎에서 ‘브라운 골드’를 보았다. 그러나 북미의 토종 담배는 성에 차지 않았다. 떫고 독해서 애연가인 그조차 기침을 해댈 정도였다. 스페인이 중남미에서 재배해 유럽에 뿌리는 담배와는 질이 달랐다.
“남미산 돗대는, 천상의 맛이지...” 담배 를태우는 월터 롤리 경.
거대한 파도도 자신을 죽이지 못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롤프는 배를 타고 남미로 향했다. 스페인 제국이 지배하는 트리니다드와 카라카스(현 베네수엘라)였다. 스페인은 종자 유출을 사형으로 다스리고 있었지만, 롤프는 주눅 들지 않았다. 남미산 담배가 없다면 어차피 버지니아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가만히 앉아 죽느니 발버둥이라도 쳐보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1612년, 제임스타운으로 돌아온 그의 배는 담뱃잎으로 가득했다. ‘밀수’의 성공이었다. 남미산 담뱃잎이 제공하는 강렬한 달콤함에 정착민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임스타운에 볕이 들기 시작했다.
1874년에 그려진 롤프의 담배 재배 모습.
땅을 확장해나가다
“우리에게 새 땅이 필요합니다.”
남미산 담배는 그 달콤함만큼이나 땅의 영양분을 탐욕스럽게 요구했다. 매일 젖을 달라고 보채는 담배를 땅은 오래 품지 못했다. 2년만 경작하면 땅은 메말라 버렸다. 금이 되는 담배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정착민들은 나무를 베고 습지를 메워 땅을 넓혀나갔다.
식민지의 덩치가 커질수록 원주민 파우하탄족의 불안도 커졌다. 갈등은 결국 ‘납치극’으로 폭발했다. 영국 선장 새뮤얼 아르갈이 파우하탄족과의 전투 중 추장의 딸을 납치했다. 바로 ‘포카혼타스‘였다. 그녀를 인질 삼아 영국인 포로들과 맞교환할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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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나지 않아 롤프는 청혼했다. “그녀와 결혼해 파우하탄족과의 평화를 일구겠다”고 포장했지만, 그 이면엔 짙은 욕망이 깔려 있었다.
“포카혼타스는 이제 하나님의 어여쁜 양이니라...” 세례를 받는 포카혼타스.
길고 고된 전쟁에 지친 파우하탄 추장은 이 결혼을 승인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상호 불가침 조약과 같았다. 영웅 존 롤프가 이교도와 결혼했다는 소식에 제임스타운의 사내들도 들떴다. 이제 이교도 여성들과 얼마든지 관계를 맺어도 된다는 면죄부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평소 눈여겨보던 원주민 여성들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졌다. 제임스타운은 그렇게 갈색 가을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래, 나에게 장가를 오고 싶다고...?” 찰스 러셀이 묘사한 원주민 여성.
승승장구, 버지니아 주식회사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평화 속에 만개했다. 회사가 담배 농사를 위해 새 땅이 필요하다고 하면, 파우하탄족은 “사돈지간에 못 할 일이 무엇이냐”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1614년부터 1622년까지 담배 수확량은 폭증했고, 회사의 몸집은 거대해졌다. ‘포카혼타스의 평화’ 덕분이었다.
존 롤프는 이 결혼을 철저히 ‘마케팅’으로 활용했다. 아내를 데리고 런던 왕실을 찾은 것이다. 잉글랜드 귀족 드레스를 입은 까무스름한 여인은 경이로운 구경거리였다. 제임스 1세와 신하들은 연신 “할렐루야”를 외쳤다. 소문은 런던 사교계를 넘어 금융가와 저잣거리까지 퍼졌고, 너도나도 투자하겠다며 아우성쳤다. 존 롤프의 완벽한 기업설명회(IR)였다. 런던 여정이 고단했는지, 포카혼타스는 귀국길에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전하의 위엄으로, 이교도의 땅에 기독교가 뿌리 내렸습니다.” 포카혼타스를 소개받는 제임스1세.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단순한 회사가 아니었다. 그 자체가 식민지였고, 문화이자 경제이며 정치였다. 커진 존재감을 바탕으로 그들은 ‘버제스 오브 하우스(House of Burgesses)’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정착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만드는 집단, 즉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의회‘였다. 버지니아 의회의 탄생은 정치 혁명가가 아닌, 이익을 좇던 기업인들이 쌓아 올린 탑이었다.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영원히 빛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착민과 원주민을 잇던 ‘포카혼타스’라는 끈이 끊어지자 연대감도 사라졌다. 원주민들은 담배 농사에 혈안이 된 흰둥이들이 얄미웠고, 정착민은 자연을 신처럼 받드는 야만인들을 얕잡아봤다.
“우리 쇼윈도 부부 아니예요.” 포카혼타스와 존 롤프의 결혼.
대학살의 시작
1622년 3월은 평화로웠다. 햇빛이 쨍해 축일로 더할 나위 없던 날, 원주민들은 그간의 오해를 풀자며 사슴고기와 생선을 잔뜩 가져왔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바로 그때, 원주민들은 바지춤에서 도끼와 괭이를 꺼내 들었다. ‘흰둥이‘들의 머리와 어깨를 무차별적으로 찍어댔다.
이날 하루 버지니아에서 347명이 살육당했다.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이었다. 더 이상 담배를 생산할 여력이 없어진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파산했고, 2년 후 제임스 1세는 버지니아를 왕령 식민지로 전환했다.
“맛좀봐라 이 흰둥이 놈들아.” 인디언의 공격을 받는 백인 정착민들.
사적 기업에서 왕령으로 외피는 바뀌었으나, 도시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 ‘의회’가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주식회사의 적자(嫡子)가 바로 버지니아 의회였던 셈.
100년이 훌쩍 지난 후, 식민 모국 대영제국에 맞서 미국 독립 선언을 주도한 곳은 버지니아였다. 미국 헌법의 꽃이라 불리는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버지니아 권리장전’에서 그 얼개를 따왔다. 오늘날 미국이 여전히 세계 경제 질서를 주도하는 건, 태생적으로 경제인의 차가운 합리성 위에 세워진 국가여서가 아닐지.
“버지니아의 위대한 반대가, 미국 독립의 초석을 낳을 것이오.” 버지니아 의회의 결의안 연설.
미국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놓인 포카혼타스 동상. [사진출처=Blueberrythefish]
<네줄요약>
ㅇ스페인이 중남미를 개척하자, 영국은 ‘버지니아 주식회사’를 세워 미 대륙 식민지 건설에 나섰다.
ㅇ기근으로 애를 먹었으나, 존 롤프가 등장해 담배 농사로 대박을 쳤다.
ㅇ존 롤프는 원주민 포카혼타스와 결혼해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운영해 나갔다.
ㅇ포카혼타스 사망 뒤,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사라졌지만, 그 뒤를 버지니아 의회가 계승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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