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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원장 경제 칼럼니스트]



▲ 윤석열 전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8월6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 마련된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직 대통령의 친구이자 멘토라는 변호사는 김건희 여사의 근황이라며 “내가 죽어야 남편이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전했다. 우리 언론은 이를 그대로 인용했다. 정작 김건희 여사측은 사실을 부인하며, 당사자의 권익을 심하게 훼손한다고 반발했다. 언젠가부터 우리 언론은 그의 말을 중진의원이나 장관 삼성카드대출신청 들보다 더 인용한다. 그는 이제 말을 전하는 '전언가'가 된 것 같다.

따옴표 저널리즘이 텍스트가 된 사회에서 언론은 습관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전한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이상한 경우가 많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위를 부여했을까.
과거 국정농단 스캔들로 실형을 선고받은 최서원씨의 딸도 툭하면 우리 채움론 언론에 등장한다. 거대한 정치 스캔들의 중심인물과 그의 가족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어머니의 동정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사면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그가 '새해 예산안을 평가'하는 것도 인용해 보도한다. '이재용 삼성 회장의 부당합병과 회계부정'에 대한 의견도 인용해 보도한다. '변태적 망상'이라며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아이폰4갈아타기 폄훼하고 노벨상위원회를 비난하는 글도 인용해 보도한다. 그에게 우리 사회를 재단할 수 있는 어떤 권위가 부여됐는지 알 길이 없다.
그들은 늘 납작하고 뜨겁기만 한 주장을 펼치고, 우리 언론은 별 생각 없이 이를 받아 적는다. 정치에 중독된 훌리건이 열광하고 그렇게 클릭 수가 늘어난다. 우리 언론 플랫폼에서 갈수록 성숙한 숙의는 사라지고 확 개인파산신고 신에 찬 이들의 고성만 가득하다.
“가계약금 받고 3억 올라… 배액배상에 1000만 원 얹어줬다.” 며칠전 한 경제신문이 전한 부동산 관련 기사다. 분당의 한 집주인이 블라인드에 '집을 팔고 일주일만에 3억 원이 올라서, 계약금에 1000만 원을 얹어주고 계약을 해지했다'는 내용이다. 본인 확인도 없이 블라인드의 글을 인용해 기사가 만들어 새마을금고 대체휴일 진다. '블라인드'는 누군가 나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이용하는 공간이다. 당연히 내용이 자극적이고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최근에는 블라인드를 기반으로 한 기사도 자주 등장한다.
어떤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확인되지 않는 화자의 주장을 싣는 경우도 많다. 몇 해 전 임대차보호법이 세입자에게 유리하게끔 개정됐다. 일부 언론은 강남의 공인중개사 김모 씨의 말을 인용하며 “화가 난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인상하면서 오히려 세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경제에서 공급자가 화가 나면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을까. 경제학자나 부동산 애널리스트의 설명을 구하기 힘드니 김 모씨라는 공인중개사를 인용한다. 김 모씨가 어디 사는 누군지는 물론 알 길이 없다.



▲ 취재, 기자. 사진=gettyimagesbank



인터뷰에는 원칙이 있다. 시장의 갈치 장수 할머니에게 갈치에 대해 물으면 알찬 인터뷰가 나온다. 그렇다고 할머니에게 멕시코가 미국에 수출하는 수산물의 품목별 관세를 물으면 안된다. 우리 언론이 툭하면 번지수가 잘못된 인터뷰이를 찾으면서, 정작 깊이와 균형감을 갖춘 인사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는다. 보편적 주장은 그렇게 자꾸 확장성이 쪼그라든다.

생각해볼 시간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주장을 그냥 받아 적은 것은 그저 관행의 산물일까. 혹시 기자가 하고 싶은 주장을 '전언가'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기자 스스로 악의적 오독을 기대한 것은 아닐까. '블라인드'를 자주 인용하는 기자는 어쩌면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2021년 한강에서 의대생이 안타까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타살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한 경제신문은 사고 현장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 신문이 '아담한 체구에 머리가 하얗게 센' 이라고 소개한 할머니는 사고 현장에서 사건의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이 신문이 그 할머니의 주장을 믿고 소개한 이유는 할머니가 '70년대 수사반장을 많이 봤기 때문'이였다. 그 기사는 제목도 선명했다. <한강 대학생 현장에 나타난 할머니… “수사반장을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