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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베네치아와 부산, 두 영화제 기자 시사에서 경험한 반응은 사뭇 달랐다. 베네치아에서 외신 기자들의 반응이 열광이었다면, 부산에서의 반응의 상당수는 “글쎄…”였다. 맞고 틀리고는 없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이 온도차에서 느낄 수 있듯 보는 이의 취향을 크게 타는 영화라는 점이다. 특히 박 감독의 전작 ‘헤어질 결심’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24일 개봉한 ‘어쩔수가없다’는 예상 밖의 영화가 될 확율이 높다.
‘어쩔수가없다’는 감성적인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 사이의 미세한 여백도 없다. 이 영화를 보는 건 안전벨트를 꽉 메고 광기 충만한 ‘박찬욱 어 서브프라임등급 트랙션’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가장의 실직과 가족의 위기, 신분의 추락과 이웃의 조롱, 위태로운 결심과 수행 과정의 ‘삽질’, 극한의 소동과 불길한 해피엔딩 등이 빈틈없이 꽉 짜인 얼개의 트랙 위를 달린다. 캐릭터에 대한 쉬운 이입도, 그렇다고 안전한 거리감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연출 탓에 극 초반 멀미를 느낄 수 있지만, 적응된 다음 질주를 만끽하는 여유자금법 즐거움은 박찬욱 작품 가운데 최고치에 가깝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25년간 일하던 제지 공장에서 하루아침에 잘린 만수(이병헌)는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선망하는 자리 신차 할부 조건 에서 일하는 선출(박희순)을 없애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만수는 실제 경쟁자가 될 만한 사람들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가짜 구인 공고를 낸 뒤 모은 이력서에서 추린 구범모(이성민)와 고시조(차승원)를 제거하기로 하지만, 그는 살인 전문가가 아닌 종이 전문가다.
실직한 가장과 붕괴 위기에 놓인 가족,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 등에서 봉준호 감 새로운주택담보대출 독의 ‘기생충’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어쩔수가없다’는 같은 소재로 두 예술가가 얼마나 다른 세계를 펼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제목부터 ‘기생충’은 서로 혐오하거나 증오하지만 서로에게 빌붙어 살아야 하는 존재들의 본질을 가리키는 반면, ‘어쩔수가없다’는 인물들이 상황을 모면하게 위해 손쉽게 끌어들이는 핑계다. 만수가 애써 준비한 항의문을 첫 줄도 읊기 전 무서류당일대출 에 떠나버리는 외국인 임원, 실직 뒤 다른 재기의 기회를 마다하고 술독에 빠져사는 범모, 경쟁자를 죽여야 재취업이 가능하다고 믿는 만수,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의 표면에만 머물고 본질을 피하고자 이 말을 내뱉는다. 실직 통고를 받기 직전 만수가 제 손으로 공들여 가꾼 집 정원에서 바비큐를 하며 “다 이뤘다”고 행복해하는 장면이 아름답지만 얄팍하게 빛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영화에는 박찬욱 특유의 정교하고 세련되게 설계된 화면과 우아하고 때로는 강렬한 음악이 넘쳐난다. 그 자체로 시청각적 즐거움을 주면서도 아름다움의 과잉이 내는 파열음은 영화의 주된 정조인 부조리한 유머를 강화한다. 관객의 웃음소리도 집어삼킬 정도로 크게 울리는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를 배경으로 만수와 범모 부부, 3명이 벌이는 무성영화의 한 장면 같은 대환장 소동극이 대표적이다.
표면만을 달려가는 모든 캐릭터의 허약한 대화와 난장이 잦아든 자리에 남는 건 지독한 씁쓸함과 섬뜩한 해피엔딩이다. 국내외에서 찬사받은 이병헌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중심에서 벗어난 위치에 놓여있음에도 영화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주는 손예진의 연기도 반드시 언급해야 할 만큼 빼어나다. 개봉일인 24일 0시까지 예매량 40만장을 넘기며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사전 예매율(54.2%)을 기록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