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이달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산양. 국가유산청 누리집


개발·폭설·산불에 더해 멧돼지 전염병을 막는다며 인간이 마구 만든 울타리까지, ‘4중고’에 시달리며 멸종위기에 처한 산양이 ‘11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선정됐다. 정부는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는다며 멧돼지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주요 도로를 따라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울타리’(ASF울타리)를 설치했으나, 산양을 비롯한 여러 야생동물의 이동을 막아 떼죽음을 일으켰다는 비판이 컸다.
2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반도 산림생태계를 대표하는 초식동물인 산양을 ‘이달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산양은 이름에 ‘양’이 들어가지만 생물학적으론 소과에 속하는 중형 포유류로, 약 200만 년 전 출현했을 당시의 외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린다. 몸길이는 105~130㎝, 꼬리 길이는 11~16㎝, 체중은 25~35㎏ 정도로, 얼굴선이 없어서 외국산 산양과는 많이 다르다 . 전체적으로 회갈색이나 담흑갈색을 띠고, 이마에서부터 귀 사이를 지나 목에 이르기까지 갈기와 같은 검은 털이 있으며, 이마와 뺨, 가슴, 꼬리 안쪽의 흰 털이 산양을 특징짓는 외형적 요소다.



11월 이달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산양. 국립생태원 제공


시베리아, 중국 지역과 우리나라 설악산, 오대산, 대관령, 태백산 일대 등 세계적으로도 국한된 지역에만 분포한다. 경사진 바위 틈 등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림지대에 서식한다. 암수 모두에게 13~14㎝ 길이의 원통형 뿔이 있는데, 성체 수컷은 주로 단독 생활을 하지만, 어미와 새끼는 2~3마리씩 작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한다. 주로 새벽과 저녁에 활동하고 바위이끼, 잡초, 진달래와 철쭉 등 여러 종류의 푸른 잎과 연한 줄기를 먹는다. 일정한 장소에서 떠나지 않고 살며, 멀리 갔다가도 되돌아오는 성질이 강한 동물이다.
산양은 1900년대 초까지 전국적으로 분포했으나 산업화 등으로 점차 서식지가 줄었고, 특히 약용(한약재), 식용, 박제용 등으로 무분별하게 포획되면서 개체 수가 급감했다. 1964년과 그 이듬해 겨울 강원도에서는 대폭설로 먹이를 찾아 내려온 산양 3천여마리가 포획됐다는 기록도 있다. 그 결과 국가유산청은 1968년 산양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환경부는 1998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산양의 생태 복원을 위해 2007년부터 월악산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산양을 복원하여 100여마리 이상의 안정적인 개체군을 형성했으며, 다행히 산양의 서식 범위는 월악산을 넘어 강원도 고성군부터 경상북도 경주시까지, 백두대간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확장되고 있다”고 밝혔다.



산양의 최남단 서식지인 울진군에 설치된 무인센서 카메라에 촬영된 산양의 모습. 물을 마실 수 있는 불영계곡이 인근이지만 ASF울타리로 통로가 막혀있다. 녹색연합 제공


2023~2024년 겨울 산양의 떼죽음이 큰 문제로 부각됐는데, 환경단체 등은 당시 폭설과 함께 돼지 전염병을 막는다며 설치한 ASF울타리가 산양의 이동을 가로막아 떼죽음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앞선 2022년에는 산양의 서식지인 울진·삼척에 대형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겨울철 폭설이 잦아져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무리가 눈 속에 고립되어 폐사하는 일도 발생함에 따라 꾸준한 보호 활동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을 허가 없이 포획·채취·훼손하거나 죽이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산양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국립생태원 누리집(nie.r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기자 admin@gamemong.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