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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부자였다는데 우리는 왜 가난하지?’
친척들의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 신영업 지사는 4남 1녀 중 인물이 제일 출중했다고 한다. 합천에서 제일 큰 약방을 운영하면서 집안에서 일하는 식모들까지 공부시킬 정도로 진보적인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할아버지의 후손이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2020년 정년퇴직 후 할아버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분홍빛 꿈을 가지고 시작했었는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셨을지 몰랐어요.”

위령비서 시작된 여정
양산 ‘신영업 지사’ 손녀할아버지 기록 럭키세븐
찾기 위해3년간 부산·서울 오가며도서관·기록원 자료 수집“제대로 된 수형기록 없어건국훈장 등급 낮게 받아”



신영업 지사(뒷줄 오른쪽 끝) 모습./신성애씨 제공/


◇거창 위령비에서 시작된 운명적 만남= 친구와 드라이STOCK
브 삼아 들른 거창에서 ‘거창사건추모공원’에 우연히 방문했다가 위령비를 발견했다. 할아버지가 합천에서 약방을 크게 하셨다던데 합천에도 위령비 같은 것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알아보니, 위령비는 아니어도 전쟁사유가족모임이 있었다.
거기서 신영업 지사의 유족들을 애타게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해 1년에 한 번씩 위령제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바다이야기 모바일게임
된 신성애씨는 그 길로 합천행을 택했다. 합천에서 할아버지가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씨는 왜 할아버지가 거기에 가입했으며, 이렇게 똑똑한 분인데 왜 끌고 가서 죽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어요. 의심만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에 할아버지 이름을 검색하니 단편적으로 조금씩 나오릴게임뜻
더라고요. 확실히 알아야겠다 싶어서 각 도서관과 기록원 등을 3년간 쫓아다녔습니다.”



신영업 선생의 가족 사진. 오른쪽 네모칸이 신영업 선생이다./기념사업회/


◇홀로 할아버지 역사 찾아 서울로= “부산에서 서울을 하락주식
31번 갔어요. 인터넷에 있는 자료들은 빙산의 일각이고, 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가니 자료가 정말 많더라고요.”
신성애씨는 할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1924년부터 1950년대까지 신문에 나온 신영업에 대해서 찾는다고 하니 조선일보, 동아일보에서도 자료를 뽑아 도움을 줬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할아버지의 모습은 신성애씨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신영업 지사는 와세다대학까지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그때 배워온 기술로 일찍부터 젊은이들의 야학과 계몽운동을 이끌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1924년부터 나라를 위해 일하셨어요. 그런데 독립유공자의 기준이 감방에 얼마나 살고 나왔느냐가 기준이에요. 국가보훈부에 의견을 남겼는데, 우리 할아버지에 관한 많은 자료는 불에 태워지거나 물에 버려졌어요. 그래서 수형 기록이 명확히 나오지 않아요.”
조사 과정에서 가장 큰 발견은 ‘양산경찰서 습격사건’이었다. 할아버지 신영업 지사가 전병건 지사와 함께 참여했던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신문에도 크게 보도될 만큼 파장이 컸다.
“양산경찰서 습격 사건은 민간인이 경찰서를 습격했다는 것으로 굉장히 큰 이슈였어요. 일본 신문에도 굉장히 크게 보도됐거든요.”
하지만 신성애씨는 할아버지의 이런 중요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수형 기록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 표창까지밖에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수형 기록이 있어서 애족장을 받고… 그게 억울해요. 그래도 그 시절에 와세다대까지 가서 공부하시고, 그때 배워온 기술로 일찍부터 젊은 사람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계몽운동을 다 하셨지만 그만큼 인정을 못 받았어요.”



1932년 3월 18일 양산농민조합의 시위사건을 보도한 부산일보 기사. 신영업 선생이 참여한 이 시위는 1932년 3월 16일 소작농으로 구성된 조합원 300여명이 경찰에 붙잡혀 구금된 조합 간부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양산경찰서에 침입한 사건을 말한다./양산시/





1932년 3월 양산농민조합의 시위사건 당시 양산경찰서 모습./양산시/


◇양산 독립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병건 지사의 외손녀인 김종미(74)씨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사촌오빠인 전두홍씨가 양산에 있는 항일독립기념관 인근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외할아버지인 전병건 지사의 이름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항일독립기념관을 설립하던 중 전병건 후손을 물색하던 때였다.
전병건 지사는 1919년 3·1운동 때 전단을 인쇄해서 양산장터에서 운동하다 체포돼 2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에도 농민운동을 지속해서 전개했다.
전병건 지사의 생애 마지막 역시 비극적이었다. 미군이 들어오는 것을 격렬히 반대하다가 일제의 수배를 받게 되어 숨어 지내던 중 이웃의 밀고로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김종미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렇게 잡혀가면 언제 죽는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외할머니는 그때부터 넋을 잃었죠.”
김종미씨 가족은 할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섰다. 사촌오빠가 나서서 “우리도 항일독립운동기념관 건립에 힘을 보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300만원을 마련했다.
“적지만 가족끼리 돈을 모아 항일독립기념관 설립에 후원했어요. 그 이후 개소식할 때 초대도 받고 참 감사했습니다.”

역사복원, 개인은 한계
양산 출신 ‘전병건 지사’서훈 받아도 비석 없어외할아버지 뜻 기리려가족들 항일기념관 후원“독립자료 발굴·정리작업국가·사회 함께 나서야“

◇국가보훈부와의 기나긴 여정= 신성애씨는 3년간의 조사 결과를 정리해 보훈부에 제출했다. 자료를 정리하고 리스트를 만들어서 국가보훈부에 찾아가니, 거기서 ‘보훈부가 해야 할 일을 너무 잘해주셨다’는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었다.
“독립유공자의 기준이 감방에 얼마나 살고 나왔느냐가 기준이에요. 수형 기록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등급이 낮아져요.”
김종미씨의 어머니는 평생 한을 품고 살았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 할아버지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주면 원이 없겠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하지만 국가 유공자로 추서를 받은 현재도 비석이 없는 상황이다.
두 후손 모두 개인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신성애씨는 “추서를 위해 자료를 모으는 과정은 나라에서 좀 도와주면 좋겠어요. 특히 해외에서 자료를 얻어야 할 때 힘들어요. 말이 잘 통하면 도움 손길이 필요할 것도 없지만…”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무엇보다 자료 발굴과 정리 작업에 있어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두 후손의 공통된 의견이다. 개인이 서울을 31번씩 오가며 자료를 찾아야 하는 현실은 분명 개선돼야 할 문제다.



2022년 7월 전병건 선생 외손녀 김종미씨(왼쪽 두 번째)가 가족들과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를 방문해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김종미씨 제공/





양산항일독립기념관 기부자의 벽에 김종미씨의 명패가 붙어 있다./김종미씨 제공/


◇3대에 걸친 침묵을 깨고= 연좌제라는 시대적 아픔으로 인해 3대에 걸쳐 침묵해야 했던 독립지사들의 가족사. 할아버지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를 거치며 목숨을 잃었고, 아버지 세대는 연좌제의 공포 속에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리고 손자 세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진실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단순히 개인적인 가족사 복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묻혀 있던 우리 근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써 내려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종미씨가 말했듯 양산 독립사에는 전병건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고, 신성애씨가 발견했듯이 양산경찰서 습격 사건은 당시 일본 신문에까지 크게 보도될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후손들의 개인적 노력에 기댄 채 밝혀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두 후손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들의 진정한 명예 회복을 위해,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이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사회가, 국가가 이들과 함께해야 할 때다.








이하은 기자 eundori@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