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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사상 세간과 극장가를 가장 떠들썩하게 한 영화 한 편을 꼽는다면 아마 이 영화가 아닐까. ‘애마부인’ 얘기다. 제목이 선정적이라는 당시 공연윤리위원회 명령으로 ‘말을 사랑하는 여인(愛馬夫人)’에서 ‘대마를 사랑하는 여인(愛麻夫人)’으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여인, 아니 영화. 누군가에게 애마부인은 한국형 에로 영화의 효시일 수도, 당시 검열 기구의 어처구니없는 패악질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애마부인은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등장한 본격화된 성 상품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여성이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애마’는 1980년대 영화 애마부인 제작 과정을 소재로 이주식유료회원
런 성 투쟁의 전장에 있던 여성을 조명한다. 이 작품을 본인의 “숙원 사업”이라고 밝힌 바 있는 이해영 감독과 애마 탄생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해영 감독이 서울 성북동의 한 카페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문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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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부인이란 소재를 드라마로 푼다는 것이 여러 맥락에서 역설적이고 흥미롭습니다. 영화 프로젝트를 드라마로 푼다는 것과 널리 알려진 에로 영화를 메이저 매체인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로 만든다는 것. 과연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배태된 것인가요.
“이야기 자체를 떠올린 것은 오래됐습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찍고 난 직후황금성
였으니 아마 2006년에서 2007년 사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애마부인으로 발탁돼 영화 주인공이 되는 여성의 이야기를 생각했어요. 그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알력 다툼, 영화산업 이야기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시놉시스를 썼지만 너무 방대했습니다. 이걸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일단 덮어놨죠. 궁극적으로는 3시간 이상 그리고 몇 회 분량지역난방공사 주식
으로 내보낼 수 있는 최적의 매체를 만나게 됐습니다. 좀 닭살 돋지만 숙원 사업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내가 청년 시절부터 줄곧 품고 있던 일종의 과제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애마부인을 봤을 때 기억과 경험이 궁금합니다.
“영화 자체에서 큰 감흥을 얻었던 것 같진 않아요. 다만 애마부인 같은 영화의 아이콘이세력주
된다는 것, 예컨대 한 시대의 섹스 심벌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남성과 다르게 여성이 섹스 심벌이 되는 경우 그에 따른 꼬리표나 조건이 훨씬 가혹하지 않나. 그런 후면의 감정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감독님의 첫 드라마가 아닌가요. 영화보다 호흡이 긴 매체라는 점에서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애마부인은 방대한 인물과 서사가 펼쳐지는 이야기예요. 직렬식이 아니라 병렬식 구조를 지닌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따라서 애초에 시리즈 같은 긴 형식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입니다. 단점은 사실 장점과 같은 이유이기도 한데, 그렇기에 쓰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영화가 한 번 펜을 잡고 쭉 써 내려가는 형식이라면 드라마는 쓰는 과정에서도 계속 앞으로 돌아가서 캐릭터를 살펴보고 여러 각도에서 다시 점검해야 했습니다.”
▷영화사적 고증이 뛰어나요. 고증 기간은 얼마나 됐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뺄 수밖에 없는 설정도 있었나요.



“자료를 모으고 취재하는 기간을 길게 가졌어요. 보조 작가와 함께 방대한 자료, 예를 들어 애마부인과 관련한 잡지, 신문 기사, 논문, 검열 자료를 꼼꼼히 읽었죠. 물론 관계자나 원로 영화인 인터뷰도 꽤 많이 했습니다. 선배님들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것도 있었지만 너무 극단적이거나 문제적인 내용은 무용담으로만 듣고 만 게 많아요.”
▷애마부인과 애마에서 배우의 노출 신이나 표현 수위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든 주요한 이슈입니다. 표현 수위에 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사실상 이 주제에 대해 촬영 직전까지 제작진과 고민하고 논의했어요. 궁극적으로는 큰 가슴을 가진 여성 혹은 여배우가 등장한다는 것이 애마부인의 아젠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영화를 소재로 하는 이 드라마가 그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갈 순 없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을 악용하는 일도 있어선 안 됐어요.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불필요한 노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1980년대 그러니까 여배우 혹은 여성의 노출을 강요하고 집착했던 산업과 사람을 돌아보는 일종의 자아 비판 같은 것인데, 그런 반대의 전제를 가진 드라마가 배우의 노출 신을 스펙터클화할 수 없었습니다. 애마는 에로티시즘을 표방하는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죠.”
▷애마의 강점 중 하나는 등장인물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캐릭터 하나하나가 오리지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전형성을 전복하는 인물이랄까. 안길강 배우가 맡은 디자이너 ‘폴 고’, 이성욱 배우의 안기부 직원 ‘최실장’이 대표적입니다. 보통 한국 영화가 그리는 남성 디자이너라든지, 악덕한 안기부 관료 등의 이미지가 있지 않나요. 애초부터 캐릭터의 전형성에 대한 경계가 있었던 것인가요.
“전형성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굳이 했다기보다는 그냥 제 기질인 것 같아요. 이성욱 배우와 우지현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시나리오상으로 비교적 전형적인 인물로 쓰인 건 맞습니다. 다만 그렇게 연기하지 않고 그 안에서도 변칙을 주는 배우를 찾고 싶었는데 오디션을 그렇게 봤어도 찾기 쉽지 않더군요. 다들 매뉴얼대로 하는 것 같았어요. 배우에게 좀 다르게 해보자는 얘기를 몇 번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 재미있는 스타일을 갖춘 배우를 찾다 보니 우지현, 이성욱 같은 배우가 눈에 띄었습니다.”
▷‘의상’을 상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리우드에 ‘앤 로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최세연 의상 감독(‘기생충’ ‘옥자’ ‘도둑들’ 등 작업)이 있지 않나요. 어떤 협업 과정을 거쳤나요.
“특별한 주문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알아서 해라”라고 했어요(웃음). 전작 ‘독전’을 함께했기에 서로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죠. 강조했던 말 한마디가 있다면 “예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강렬하고, 끝내줘야 하고, 뭔가 임팩트가 엄청나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그런 나의 욕망을 정확히 간파했고 실현해줬어요. 역시 감각이 독보적인 사람입니다.”
▷6부작 중 마지막 두 편은 애마부인이 개봉되고 난 후 이야기로 감독 이해영의 상상입니다. 특히 방효린 배우가 대종상 시상식에 말을 타고 오는 장면이 굉장히 드라마틱해요. 피날레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전혀 고민하지 않았어요. 주애가 말을 타고 와서 희란을 태워 가는 피날레는 2000년대에 이 이야기를 구상했을 때부터 떠올린 이미지였어요. 어쩌면 애마가 탄생하기 위해 가장 결정적인 영감을 준 중추였는지도 모릅니다. 비주얼화돼 나온 결과물도 만족스럽습니다.”
▷애마부인이었던 안소영 배우의 카메오 출연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의외의 대목이었습니다. 어쩌면 본인 작품에서보다 더 멋지고 우아한 활약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단순한 카메오가 되는 건 제가 원치 않았어요. 정점의 타이밍에서 멋지게 등장하게 하고 싶었어요. 연기에서는 제가 안소영 선배님께 감히 연기를 어떤 식으로 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이 드라마에 꼭 나와주십사 간곡히 말씀드렸습니다.”
▷애마에서 충무로는 상스럽고 야만스러우면서도 각자 낭만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아이로니컬한 공간입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충무로라는 세계는 어떤 것이었나요.
“작가로 영화산업에 입문했을 때는 충무로가 없어진 이후였고 다양한 회사가 강남에 생기기 시작했어요. 물론 선배들을 통해 충무로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애마에 나오는 청맥다방은 충무로에서 영화인이 모여 일을 도모했던 곳이죠. 다시 말해 당시는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이 살을 부딪쳐가며 일하던 시기입니다. 그러니 패싸움이 난무하기도 하고 살가운 추억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양면의 역사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가난과 열악을 낭만으로 버티고, 또 낭만이 있어서 때로는 아름다운 것이 만들어지고 말입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