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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인 아나키스트들
김종진은 1927년 10월 하순 북만주 하이린(해림)에 도착, 김좌진을 만났다. 홍성 출신의 6촌형 김좌진은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북만주의 여러 독립운동단체가 통합, 결성한 신민부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김종진은 이달 김야화 등과 독립운동 단체인 흑우회를 조직, 아나키즘을 알리기 시작했다. 또한 (만주를 근거로 한 한국민족해방운동의 기본계획)을 작성하여 김좌진에바나나게임
게 내놓았다. 아나키즘에 기반한 경제공동체와 농촌자치조직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독립운동 기지를 구축하자는 내용이었다. 김종진은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밀산 영안 오상 액목 돈화 안도 장백 무송 연길 왕청 등을 돌며 북만주 일원 동포들의 생활상을 살폈다. 구조적 가난과 토착지주 및 자본가의 수탈, 일제와 공산주의자의 위협, 독립운동단체의 현황 등을 두루 파악했거래량급증
다. 나중소 백종렬 오상세 황학수 등 만주의 독립운동가들도 만났다.



이회영(왼쪽), 황학수, 조영원, 이종주, 유림(유화영). 사진=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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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최석영, 백정기, 이강훈, 유기석. 사진=독립기념관





이달(왼쪽), 이을규, 장해평, 신현상. 사진=독립기념관


김좌진은 그의 보고서에 입각하여 신민부를 개편하기로 했온라인야마토
다. 신민부는 1927년 2월 일본경찰의 습격을 받아 중앙집행위원장 김혁 등이 체포됐고, 노선을 싸고 이견이 불거졌다. 무장투쟁을 옹호하는 군정파와 자치 및 실력양성을 주장하는 민정파로 대립했으며, 각자 본부를 설치한 채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군정파의 우두머리인 김좌진은 김종진을 신뢰하고 일을 맡겼다. 친족인 데다 근대식 군사 교육기관인 운남강황금성3
무학교를 나온 실력에 이론과 실천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김종진은 아나키스트 동지인 이을규를 초빙했고, 유림(유화영)도 하이린으로 들어와 합세했다.



시야 김종진은 1931년 8월 26일 하이린역 인근에 사는 동지 조영원의 집에 찾아갔다가 납치돼 행방불명됐다. 사진은 옛 하이린역 광장. 사진=독립기념관


김좌진은 잠시 아니키즘을 받아들이는 데 머뭇거렸다. 신민부 군정파 안의 대종교도들도 고려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움직임도 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종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1929년 7월 이을규 김야운 엄순봉 이강훈 이달 이붕해 이준근 등과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했다. 연맹은 재만동포의 생활개선과 항일민족운동을 위한 단체라며 민족주의와는 연합하되 공산주의를 반대한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좌진은 연맹의 노선을 만족하게 여겼고 교육과 사상계몽, 생활개선 지도는 연맹이 맡고, 그대신 새롭게 개편하는 조직에 참여하라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1929년 7월 신민부 군정파와 연맹이 통합, 아나키즘 성향의 한족총연합회가 출범하기에 이른다.
한족총연합회 강령은 김종진이 추구했던 목표가 잘 드러난다. 연합회의 성격에 대해 재만 한국교민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향상 발전을 도모하며, 동시에 항일 구국을 완수하기 위하여 재만동포가 총력 집결한 자주 자치적 협동 조직체라고 밝히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 교포들의 집단정착 도모와 유랑 방지, 집단부락 조성 영농지도와 개량, 공동판매 공동구입, 경제적 상조금고 설치 등을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 사업 소학교와 중학 설립 운영, 정기간행물 간행과 순회강연, 순회문고 설치와 성인 교육, 장학제도 운영 청장년 단기 군사훈련 군사간부 양성 위한 교육기관 설립 항일 게릴라 부대의 교육훈련과 지휘·지방치안을 위한 통솔부 설치 등을 추진했다. 자치활동을 위해 결의기관인 총회가 사업계획과 예결산을 심의하고 대표자를 선거로 선출하는 자치제도도 도입했다. 무료 공공교육제도, 협동조합, 지방자치 등은 크로포트킨 등 아나키스트들이 제창한 사업이었다. 여기에 군사훈련과 항일 게릴라부대 교육 등을 더함으로써 아나키즘 실현과 항일무력 투쟁의 기반 조성이라는 2가지 지향점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총연합회 위원장은 김좌진, 부위원장 권화산, 농무 및 조직선전 김종진, 교육 이을규, 군사는 이붕해가 맡았고 한청암 정신 박경천 강석천 이종주가 부(部)의 위원장, 이달 김야봉 이덕재 엄형순 등이 부의 차장을 담당했다. 이와 함께 조직선전부가 3개의 부대를 편성, 지역별로 일선에 나가 홍보활동에 나섰다. 만주의 동포들은 자신들의 궁핍함과 고통을 헤아리고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한 총연합회의 활동에 크게 고무됐고 손을 들어 환영했다. 교포자녀의 교육을 위해 학교 설립도 서둘렀다, 북만중학기성회를 만들고 학교를 세울 땅도 임대했다. 해림시 산시에 정미소도 설치, 운영했다. 동포들이 생산하는 수만 석의 벼를 싸게 도정하기 위한 시설로 대표는 김좌진, 실무 책임은 김종진이 맡았다.
한족총연합회의 운동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위기를 맞는다. 1930년 1월 김좌진이 정미소에서 박상실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다. 총연합회는 격분하여 군사위원장 이붕해가 치안대를 이끌고 배후로 지목된 공산주의자 김봉환을 처단했다. 총연합회는 공석이 된 위원장에 권화산을 선출하고 김종진과 이을규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아 조직을 추슬렀다.
그해 3월 김종진과 이을규는 베이징에서 열린 무정부주의자대표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는 아나키스트 신현상과 최석영이 충남 예산의 호서은행에서 탈취해온 5만8000원을 처리하기 위한 자리였다. 당시 쌀 1가마 값이 8원으로 엄청난 거금이었다. 자금의 용처는 만주의 광복운동 기지 건설에 사용하기로 결정됐다. 이회영이 아들 이규창을 보내 설득하고 김종진이 주장한 결과였다. 그러나 일본영사관과 결탁한 중국경찰의 습격으로 김종진 이을규 신현상 최석영 유기석 등 11명이 체포됐다. 베이징시에 근무하는 유기석의 노력으로 신현상과 최석영을 제외하고 모두 풀려났지만 자금은 압수되고 말았다.



헤이룽장성 상지시 오길밀향 한족자치연합회 결성지. 1930년 1월 26일 김좌진이 공산주의자들에게 피살되자 한족총연합회에 참여했던 일부 인사가 한족자치연합회를 조직했다.사진=독립기념관


1930년 9월 한족총연합회는 핵심인물인 이을규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푸젠으로 가던 중 체포됐다. 김종진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상하이에 사는 아나키스트 스승 이회영에게 도움을 청한다. 백정기와 정화암 김지강 장해평(이규숙 남편), 이회영의 딸인 이규숙과 이현숙 일행이 해림에 도착했다. 이들은 한족총연합회가 추진하는 교육과 사상계몽, 생활개선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31년 2월에는 한족총연합회 일부 인사들이 한족농무연합회와 한족자치연합회를 조직했다.
그러던 중 불행한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다. 7월초 재만무정부주의자연맹과 한족총연합회의 주요 인사인 이준근과 김야운이 석두하자에서 피살됐다. 김종진도 8월 26일 하이린역 인근에 사는 동지 조영원에 집에서 납치돼 행방불명되기에 이른다. 만주에서 아나키스트운동을 벌인지 4년째, 30세의 젊은 나이에 아내와 3명의 자식을 남겨둔 채 세상을 뜬 것이다.
김종진의 동지였던 이을규와 정화암은 사건의 배후로 공산주의 세력을 지목했다. 아나키즘을 내세운 한족총연합회가 세력을 확장하자 위기감을 느낀 공산주의자들이 암살했다는 것이다. 김좌진과 김종진이 순국하면서 아나키즘을 통한 만주의 독립운동기지 건설은 중단됐다. 아나키스트들은 상하이와 베이징으로 돌아갔고, 총연합회 구성원들도 구심점이 없어지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김종진이 활동할 무렵 만주는 여러 세력이 부딪치는 격변의 용광로였다.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가 천하통일을 꿈꾸며 북벌에 나섰고, 군벌 장쭤린은 동북지방을 장악하고 있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남만주철도를 세우고 1906년 관동군을 설치했으며, 소련 볼셰비키 정부도 하얼빈-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중동철도를 기반으로 연해주와 만주, 뤼순항을 노렸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이듬해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웠다. 강대한 세력들이 우글거리는 틈바구니에서 신념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김종진과 함께 북만주에서 아나키스트운동을 벌였던 이을규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혔다. 김재근 선임기자





함남 안변 출신으로 신민부 군사부 위원, 한족총연합회 군사위원과 경리부장을 지낸 이종주도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김종진의 아나키즘 운동은 사상사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후난성에 이상촌을 건설하려다 좌절했던 이회영이 2차례나 직접 만주로 오고자 했고, 1932년에는 핵심 인물들과 함께 자신의 두 딸과 사위 장해평을 보내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성공 여부를 떠나 이처럼 의미 있는 시도를 한 것 자체가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회영과 신채호 백정기 박열 김지섭 나석주 엄형순(엄순봉) 김산 이육사 김상옥 가네코 후미코 등 유달리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항일투쟁 전선에서 순국한 사실도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