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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영원히 이 아이를 이길 수 없다고 예감한 건.”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은중(김고은)과 평생 애증 관계로 얽힌 친구, 상연(박지현)은 회상한다. 상연 자신이 은중의 손바닥을 때렸으니 너도 내 손바닥을 때리라는 말에, 은중이 이걸로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아냐고 리코더를 거두었을 때를. 재능 있고 뾰족한 상연과는 달리 은중은 평범하다. 다만 내가 아프면 남도 아픈 줄 안다. 사랑을 베풀 줄도 받을 줄도 안다. 모두가 은중을 좋아한다. 하지만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상연은 은중의 사소한 다정과 인정에도 소스라치고, 멀리 도망치거나 견증권TV
디지 못하고 관계를 부수어놓는다. 그리고 영영 미워하고 사랑한다.
사실 ‘은중과 상연’은 상연의 이야기다. 너무 많은 고통을 떠안은 여자. 비참하고 극적이고 또 지독하게 외로웠던 상연이라는 한 여자를 은중이 끝내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삶을 내레이터로서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것까지가 은중의 역할. 그런데도 은중은, 배우 김고은은 무료인터넷바다이야기
자신의 존재감을 흐리지 않는다. 오히려 찬란하게 빛난다.
은중은 배우 김고은을 닮았다. 배우 김고은의 얼굴에서 도드라지는 개성을 찾긴 어렵다. 도화지처럼 말간 그의 얼굴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모나지 않게 자리한다. 언뜻 보면 평범한, 가만 보면 예쁜, 어쩌면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선량한 이웃의 얼굴. 그런 그가 두 눈을 살풋 접고현대건설주가
코를 찡긋하며 두 뺨 가득 활짝 웃으면, 아, 저렇게 환하게 웃는구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모두가 친근하게 장난치듯 툭툭 대하지만 속으로는 몰래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어져서 괜히 마음이 간지럽다.
김고은의 평범성, 그리고 호감을 사는 힘은 그를 우리의 추억 속 어느 자리에도 데려다 놨다. 누구든 이입할 수 있고, 누구든 놀부투자연구소
떠올릴 수 있는 친밀하고 또 그리운 얼굴로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성소수자 흥수(노상현)의 ‘베프’인 재희(김고은). 성실한 은중과는 달리 나이트라이프를 불태우는 화끈한 재희는 소위 말해 ‘미친년’이지만,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흥수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지탱하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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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속 김고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은중과 상연’과 마찬가지로, ‘대도시의 사랑법’ 역시도 흥수 중심의 이야기다. 흥수의 연애, 흥수의 고난, 흥수의 성장, 모든 이야기에 재희라는 조금 특별한 우정이 함께할 뿐. 그러나 김고은은 그 모든 순간에 빛난다. 클럽으로 즐비한 밤거리를 함께 뛰는 순간에, 냉동고에서 얼어붙은 블루베리와 말보로 레드를 꺼내며 만나는 남자 욕을 진탕 하는 순간에,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자기방어에 매몰되어 버리고 마는 흥수를 두 팔 벌려 꺼내어 흙먼지를 털어주는 그 모든 순간에.
배우 김고은은 우정…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사랑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저렇게 연기해 낼 수 없다. ‘은중과 상연’을 보며 나는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이성 관계가 얽혔던 은중 같은 소중한 ‘베프’를,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며 밤마다 팩 소주를 쪽 빨며 클럽을 함께 활개 치고 다니던 재희 같은 ‘절친’을 떠올렸다. 그녀들의 맑은 뺨과 보드라운 머리칼을, 함께 와하하 웃던 웃음을, 세게 때리던 등짝을, 통화하느라 날을 새던 밤들을,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외장하드라고 부르던 천진함을, 그 사이 불쑥 난입하곤 했던 사소한 질투와 원망 같은 것들을, 기어이 주고받고 만 상처들을.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던가 보다. 나의 한 게이 친구는 SNS에서 나를 비롯한 여러 여자친구들을 태그해 “나의 모든 재희들에게”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라도 재희는, 은중은, 첫사랑보다도 그립고 또 소중한 얼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김고은은 좋은 배우다. ‘은중과 상연’이나 ‘대도시의 사랑법’처럼 곁에 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연기에서뿐 아니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치즈 인 더 트랩’처럼 ‘여주’의 입장에 최대한 많은 여성이 자신을 치환해 놓아야 하는 목표를 가진 일상 로맨틱 코미디물에서도, 드라마 ‘도깨비’, ‘더 킹: 영원의 군주’처럼 판타지 속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판타지멜로물에서도, 현실에 발을 바짝 붙이며 시청자를 몰입시킨다. 그러나 리얼리즘적 생활 연기만으로 그를 한계 지을 순 없다. 정확히 반대 항에서도 김고은은 활약한다. 영화 ‘파묘’, ‘차이나타운’처럼 웃음기 쏙 빠진 강렬한 장르물에서도 그는 하드보일드한 캐릭터 연기를 펼쳐왔으니 말이다.
그런 김고은이 대중에게 자신을 처음 각인시킨 작품이 영화 ‘은교’라고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여성 청소년을 중년 및 노년 남성의 시각에서 대상화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은교’는 신인이었던 배우 김고은의 생기와 풋풋함과 젊음에 절대적으로 빚지는 작품이다. 그러나 김고은은 흰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선잠에 빠져든 소녀에 머물지 않았고, 무럭무럭 자라나 모든 여자들의 얼굴이, 모든 여자친구들의 얼굴이 됐다. 강력한 티켓파워와 흥행력을 가진 배우이자, 호불호가 좀처럼 갈리지 않는 배우.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고 호감을 가지는 배우로서 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비하인드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나는 은중이를, 재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대신 은중이 같은 친구를 가진 상연이를, 재희 같은 친구를 가진 흥수를 질투한다. 왜냐하면 나는 깜냥부터 은중이나 재희가 결코 될 수 없고, 그들의 발치 끝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나를 받아주는구나. 끝내, 네가.”
죽음을 앞둔 상연이 은중에게 삶의 마지막 문장을 쓰듯 말할 때, 나는 너무 질투가 나서 그날 밤 종일 눈물을 쏟느라 잠을 설쳤다. 비극적인 삶이었을지라도 끝내는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가장 사랑한 친구를 되찾고, 그의 배웅을 받으며 떠날 수 있다니. 저렇게 행복한 마지막이 어디 있겠는가? ‘은중과 상연’과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면서, 나는 내가 배우 김고은에게 가진 호감의 근원을 비로소 알게 됐다. 김고은은 닮았다. 내가 사랑하고 또 부러워했던 모든 친구들을.
나는 만인에게 호감을 사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 건 나를 비롯한 대다수에게 주어지지 않은 재능이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했고 또 잊지 못하는 동성 친구들에게 지닌 그리움과 인정욕구는 마지막까지 내게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상연이가 부럽다. 은중이가 보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배우 김고은을 대책 없이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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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지 에디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에디터가 ＜GQ＞, ＜아레나＞, ＜씨네21＞, <코스모폴리탄>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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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