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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일리아드’ 이어 ‘천변카바레’ 연달아 출연한 황석정[경향신문] 뮤지컬 <천변카바레>의 배호 역으로 분장한 배우 황석정. 뮤직웰 제공“일리아드 할 땐 자려고 누우면대사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밥 많이 먹으며 떨림 버텨내”7일까지 ‘천변카바레’ 공연두 작품 젠더프리 연기 소회엔“고민하긴 했지만 메시지에 집중”배우 황석정의 50년 남짓한 인생 중 2021년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힘든 해”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열악한 공연 환경, 극강의 체력을 요구하는 작품을 연달아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과 불안감. 여기에 노모의 건강 악화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자신을 지켜준 것은 무대였다. 끝나고 나면 진이 빠져나갈 정도였지만 역설적으로 무대에서 집중하는 시간들이 일상의 숨구멍이 됐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이어 1인극인 <일리아드>와 <천변카바레>를 연달아 소화한 그는 “몸이 떨릴 만큼 두려운 도전이었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4일부터 7일까지 공연되는 <천변카바레>는 ‘안개 낀 장충단공원’ ‘돌아가는 삼각지’ 등 히트곡을 남기고 만 스물아홉에 세상을 떠난 가수 배호의 노래로 만들어진 트리뷰트 뮤지컬이다. 배호를 동경하며 상경해 파란만장한 도전 끝에 모창가수가 되는 시골 청년 춘식의 이야기가 뮤지컬의 주된 서사다. 원래는 여러 명의 배우가 출연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1인극으로 각색되었다. 황석정은 극중 배호와 춘식을 비롯해 순심, 미미, 음반사 사장 등 여러 배역을 연기한다. - 지난 9월 폐막한 <일리아드>에 이어 <천변카바레>까지 연달아 1인극에 출연하고 있다.“1인극인 줄 모르고 수락했다(웃음). 지난 공연까지는 여러 명이 출연하는 버전이었다. 연출자께서 예전부터 이 작품 주인공으로 나를 생각했다고 하시더라. 원래는 남자 배우가 맡는 배역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물었더니 내 노래에 옛사람들이 가졌던 구성진 회한이 있다고 하시더라. 할 수 있으면 하고 싶다고, <일리아드> 끝나면 합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대본을 받아보니 1인극으로 바뀌어 있더라.”- 몰랐던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다. “1인극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그전에도 다른 작품을 할 때 잠깐 나왔다가 열심히 하고 집에 가서 쉬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가 <일리아드>를 했던 건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싶은 모험심 때문이었다.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일리아드> 할 때 자려고 누우면 대사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였다. 막상 마치고 나니 그 안도감이 상당하더라. 마라톤을 완주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내가 가진 두려움을 넘어서고,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컸다.”- 체력 관리도 필요할 것 같다.“밥을 엄청 많이 먹는다. <일리아드> 할 때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부터 몸이 막 떨렸다.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몸이 미리 알고 겁을 내는 거다. 그런데 안 먹고는 버틸 수 없으니 엄청나게 먹었다.”- <일리아드> <천변카바레> 두 작품 모두 원래는 남성 배우들이 연기한 배역을 ‘젠더프리’로 해내고 있다.“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긴 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각 인물이 겪은 것,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관객들도 ‘와, 진짜 남자 같다’ 하는 느낌을 받으러 공연장에 오는 게 아니다.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듣고 교감하고 싶어 공연장에 오는 것 아니겠나.”- 배우 황석정의 목소리로 풀어내는 배호의 노래가 궁금하다.“예전에 파고다공원에서 피아노 한 대를 놓고 그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한 할아버지께서 ‘젊은 애가 그걸 어떻게 부르냐. 아무나 못 부른다’고 하셨는데 내가 노래를 시작하니 바로 우시더라. 그때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이 노래가 갖는 엄청난 힘을 느꼈다. 이 작품을 봤을 때 운명처럼, 당연히 해야 할 숙제처럼 다가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배호 선생의 노래를 정말 좋아하셨는데 실제로 아버지와 배호 선생이 비슷한 점이 있다. 우리 집이 피란민이었다가 부산에 정착했는데 배호 선생도 부산에 살았었다. 또 이분이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셨는데 우리 아버지도 밴드에서 트롬본을 연주하셨다.”- 올해 공연 환경이 위축되어 있었지만 ‘배우 황석정’은 무대에서 특히 빛났던 것 같다.“여러모로 감사하다. 특히 <일리아드>는 매 순간이 기적 같았다. 내가 대학로를 떠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막상 이 작품으로 대학로에 돌아가면서 누가 나를 보러 와줄까 싶었다. 그런데 매일 새로운 분들이 날 보러 와주시더라. 하나라도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내년 계획은 어떤가. “동기 두 명과 함께 극단을 만들어 작년부터 낭독 공연을 하고 있다. 내년에 대학로에서 공연을 올릴 계획인데 아주 파격적인 작품들도 개발하는 중이다. 앞으로 더 재미있는 공연을 준비해 관객들이 즐겁게 공연장으로 오도록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