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기로에 계속 서는 과정이잖아요.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 텐데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아 생기는 일들을 돌아보는 거죠.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길에 뭔가 있을 거라 생각해 좇아갔지만 거기엔 진정한 행복이 없었던 거죠.”



지난 18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테너 이용훈이 오페라 '카르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출처. 부산콘서트홀.


테너 이용훈은 지난 18일 부산콘서트홀에서 기자들과 진행한 게임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용훈은 19·20일 이곳에서 열리는 콘서트오페라인 ‘카르멘’에서 주연인 돈 호세 역을 맡았다. 그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에서 주역을 맡았던 세계적 테너다. 2007년 칠레 산티아고 시립극장에서 오페라 ‘돈 카를로’ 주역을 맡으면서 데뷔했다. 오페라 ‘투란도트’에선 주인공 칼라프 역 백경릴게임 만 120여 차례 맡았다.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그는 지휘자 정명훈이 선보일 이번 카르멘 공연에 함께하려 유럽 일정을 조정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공연 전일 마지막 리허설을 진행하기 직전 그는 카르멘 관람에 재미를 더할 이야기들을 직접 전했다.
이용훈의 돈 호세, 막마다 사람이 달라진다
이용훈은 한국보다 유럽에서 릴짱 더 유명한 성악가다. 그는 서울대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 메네스음악원으로 유학을 갔다. 유학길에서 처음 오페라 주연을 맡았던 작품이 ‘카르멘’이었다. 미국 버몬트주에 있는 한적한 동네인 미들베리의 교회를 개조해 지은 오페라하우스에서 카르멘의 데뷔 무대를 치렀다. “첫 카르메 공연 이후 영국 글라인드본에서 전막 공연을 했어요. 제가 쓰지 않았던 프랑스어 바다이야기룰 를 공부하면서 오페라뿐 아니라 카르멘의 원작 소설도 공부하게 됐죠.”
카르멘은 프랑스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쓴 소설이다. 하사관인 돈 호세가 집시 여인인 카르멘의 유혹의 빠졌다가 그녀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다룬다. 프랑스 작곡가인 비제는 이 소설을 활용해 동명의 오페라를 썼다. 부산콘서트홀의 예술감 손오공릴게임 독인 정명훈은 이 오페라를 콘서트 형식으로 보여주는 콘서트오페라를 기획했다.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가 극을 이끄는 가운데 무대 전면에서 성악가들이 공연 의상을 입고 연기를 더하기로 했다. 오페라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형식이다.



지난 18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테너 이용훈이 오페라 '카르멘'의 돈 호세 의상을 입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출처. 부산콘서트홀.


돈 호세의 인생을 보면 이용훈의 표현처럼 “순간의 선택이 앞으로의 삶을 좌우한다”는 말이 들어맞는다. 작품 초반부의 돈 호세는 평범한 행복을 찾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소시민의 모습에 가깝다. 어머니와 약혼녀의 기대에 부응하려 했던 그이지만 카르멘이 건넨 꽃과 사랑에 빠져 결국 수감 중이던 그녀의 탈옥을 돕는다. 하지만 규율에 얽매여야 할 군인에게 집시 여인의 요구는 벅찼다. 부대로 귀영하려는 돈 호세에게 카르멘은 이별을 통보한다. 자신의 사랑에 대해 역설하는 돈 호세에게 카르멘은 차가울 뿐이다. 마지막 4막에서 분노에 찬 돈 호세가 결국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이는 것으로 공연은 끝난다.
이용훈은 막이 흘러가면서 바뀌는 돈 호세의 감정선에 주목했다. 원작 소설에선 돈 호세를 조금 더 폭력성이 내재한 인물로 다룬다고. “돈 호세는 처음엔 자연스럽고 열정이 어느 정도 있다가 점점 광기가 서리면서 거의 미친 사람처럼 극적으로 바뀝니다. 단정한 군인이었다가 강도가 되고, 더 나아가서 폐인에 살인범이 되는 거잖아요. 인생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돈 호세의) 색깔이 다 다릅니다. 이런 각각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면서 연기와 노래를 하려 합니다.”
콘서트 형식 더해 음악과 연기 모두 살려
이번 공연은 본래 콘서트 형태로 기획됐다. “원래는 무대장치 없이 턱시도를 입고 서서 노래하려 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움직임을 가미하는 쪽으로 욕심이 생겼죠. 관객분들의 흥미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 ‘의상도 입을까, 액팅(연기)도 할까’ 하다가 이렇게 온 거죠. 사실 콘서트만 하면 (성악가로선) 더 좋아요. 액팅이 힘들 거든요. 콘서트와 액팅을 겸해야 하는 콘서트오페라는 도전적이에요.”



지난 18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테너 이용훈이 오페라 '카르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출처. 부산콘서트홀.


이용훈은 카르멘이 프랑스 오페라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태리 오페라 음악은 마지막에 고음을 ‘빡’ 내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비제 오페라에서 아리아는 트리플 피아니시모(아주 여리게)로 고음을 내다가 마지막에 저음으로 끝나곤 해요. (고음에서 저음으로 급변하는) 아주 대조적인 스타일이죠. 이탈리아 오페라가 폭발하듯 화려한 부분을 갖고 있다면 프렌치 오페라는 강렬하진 않아도 여운을 던져주는 향수를 담고 있어요. 카르멘의 아리아나 ‘투우사의 노래’와 같은 음악에선 극적인 부분도 많이 드러나죠. 아주 화려한 건 아니지만 귀에 쏙쏙 들어와요.”
이번 공연은 이용훈의 강력한 의지 덕분에 성사됐다. 그는 향후 4년 치 일정이 가득 차 있어 1~2년 내 일정을 새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부산 무대에 서고자 기존 일정을 바꿨다. 부산콘서트홀도 그에게 작품 선택권을 줄 정도로 이용훈 섭외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공연 작품으로 한국에서 자신이 선보인 적 없던 ‘카르멘’이나 ‘토스카’를 제안했다. 정명훈은 이 중 카르멘을 골랐다. 이용훈은 “(정명훈 선생님은) 오페라 가수뿐 아니라 모든 합창단 사람 하나하나를 존중해주시고 항상 의견을 들어주시는 분”이라며 “가수가 편안하게 노래하도록 해주신다”고 강조했다.
이용훈은 내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가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1부, ‘팔리아치’를 2부로 선보이는 공연에도 출연한다. 독일 뮌헨에서 오페라 ‘투란도트’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아이다’를 공연하는 일정도 잡혀 있다. 모두 주연을 맡는 무대다. “한국은 오페라나 클래식 음악에선 변방이지만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굉장히 많은 나라에요. 부산콘서트홀과 같은 좋은 극장이 자리 잡으면 우리나라의 훌륭한 인재들이 자신의 음악을 고국에서 더 많이 선보이게 될 겁니다. 아시아인이 외국에서도 인정을 받았는데 같은 민족에게 인정 못 받겠어요? 외국에서도 이번 공연을 보러 팬분들이 온다고 해요. 이러한 공연 기반이 전국적으로 넓어졌으면 합니다.”



지난 18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테너 이용훈이 오페라 '카르멘'의 돈 호세 의상을 입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출처. 부산콘서트홀.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