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건축의 1세대 건축가 중 한 명인 나상진이 설계한 주택을 스타벅스코리아는 새롭게 리모델링해 지난 2024년 장충라운지R점으로 문을 열었다. /사진=서윤경 기자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글을 쓰고 피카소는 예술을 말하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릴짱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깊은 만추였다. 서울 중구 장충동의 골목 안 주택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령대부터 성별까지 다양한 45명의 사람들은 대문 릴게임몰 옆 주차장으로 연결된 문으로 들어섰다. 안내 패널을 따라가니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한국 1세대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한 이 집, 건축주는 대선제분의 창업주 일가다. 1960년대 지은 대형 단독주택으로 4대에 걸쳐 거주했다. 그리고 지난해 스타벅스가 공간을 새롭게 꾸며 '장충라운지R'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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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공간의 경험을 말하다

이 날,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걸음했다.

대저택의 새 입주자,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가을 5주 동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왜 중요한지, 그래서 어떻게 꾸몄는지 쿨사이다릴게임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유하는 시간 ‘멘토와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스타벅스코리아 스토어컨셉기획팀의 최지민 파트너가 지난 11월 14일 장충라운지R점에서 '공간의 구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주제로 강연하는 모습. /사진=스타벅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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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20대 청년부터 머리 희끗한 중·장년층까지 참석자 연령대는 다양했다.

멘토로 나선 스타벅스코리아 스토어컨셉기획팀의 최지민 파트너는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굳이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매장을 만든 이유를 묻는 질문이었다.
건축과 커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한 프로그램다웠다. 나상진 건축가에 대한 공간을 이야기하고 커피를 말했다. 그리고 정답이 나왔다. "커피, 그 이상의 가치 있는 경험을 주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었다.


커피, 왜 공간인가

커피라는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은 그저 장소의 의미를 넘어선다. 커피와 건축이 구조적으로 비슷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건축 이야기를 전하는 유튜브 채널 ‘리벨럽’은 “커피와 건축이 똑같다”고 단언한 뒤 비슷한 점을 나열했다.

카페에서 사 먹는 커피는 기본인 에스프레소에 무엇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다른 맛을 내고 건축은 베이스가 되는 구조체에 무엇을 올리느냐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띤다는 게 리벨럽의 설명이다.
에스프레소는 우유를 넣느냐, 물을 더하냐에 따라 달라지고 우유의 스팀 정도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건축 역시 동일한 구조체에 벽돌을 올리냐 타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갖게 되고 창문 수와 크기에 따라 형태도 달라진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 커피를 마시는 건축가에게.


커피 그리고 카페를 묻다






승효상 이로재 대표. /사진=연합뉴스



이젠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며 ‘원빈 건물’’고소영 건물’ 등 유명인의 건물을 지었다는 설명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곽희수 이뎀도시건축 대표, 100만명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 운영자이자 스타 건축가인 유현준 홍익대 교수다.

공교롭게도 세 건축가 모두 카페를 지었고 그 공간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그래서 건넨 ‘커피와 건축이 닮은 게 아니냐’는 질문에 세 사람은 모두 '공감'과 '호응'의 반응을 보였다. 덕분에 질문은 쉬워졌고 답변은 준비하듯 나왔다.
ㅡ커피 좋아하세요?사무실에 가면 차를 내어주던 승효상 대표, 카페인에 취약하다고 말하는 유현준 교수, 지인들과 와인을 즐기며 이야기 하는게 좋다는 곽희수 대표까지 세 사람은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취향은 제각각이었다.
“커피 좋아하죠. 그중에서도 에스프레소.” 승효상 대표의 말이다.
곽희수 대표는 다른 의미에서 커피 애호가였다.
“커피 좋아해요. 캡슐로도 마시고 내려서도 마시고. 그런데 저는 커피 맛 잘 몰라요. 저에게 커피는 순간을 위한 매개죠.”



유현준 홍익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유현준 교수는 일명 '커린이(커피+어린이)'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마흔이 넘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고백한 그도 요즘은 달라졌다.

“예전엔 디카페인을 마셨는데 2년 전부터 (카페인이 든 커피를) 연하게 해서 마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제를 붙였다. “오후 3시 전에만 마신다”는 것.
ㅡ커피와 건축이 맞닿는 지점은 무엇일까요.두번째 질문에 건축가들은 자신의 철학과 시선에 맞춰 다채로운 답을 내놨다.
승효상 대표는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문화를 마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혼자건, 여럿이건 커피를 마시는 건 그 풍경 자체만으로 문화가 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 부분이 건축과 닮았다고도 했다. “건축은 그 자체가 문화 풍경”이라는 설명과 함께.
유현준 교수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카페라는 공간이 사회적 기능을 한 점에 주목했다. 사례로 든 게 유럽의 커피하우스다.
“파리나 빈은 도시화됐고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 왔어요. 시골에선 친족 중심의 인간관계라 시간이나 장소를 정해 만날 필요 없이 그냥 집에 가면 됐죠. 도시로 오면서 달라졌어요. 이익이나 관심사에 따라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커피하우스가 필요해 졌어요.”
도시에서 커피하우스는 만남의 장소였고 커피는 낯선 이와의 대화에 어색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파트 일색의 한국의 주거 공간에서도 비슷한 결로 카페는 활용됐다고도 했다.
한국에서 커피와 카페 문화가 활성화된 또 다른 이유도 전했다. 바로 ‘커피 향’이다.
“향은 공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담장처럼 같은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게 마련이죠. 커피를 내리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물을 끓이고 커피를 분쇄해 내리는 모든 과정이 다도를 넘어 제례 의식을 하듯 진행됩니다. 복잡한 도시에서 지친 이들에게 카페는 제례 의식을 하는 교회·성당·사찰 등을 찾았을 때의 평안함을 주기도 하죠.”



곽희수 이뎀도시건축 대표. /사진=네이버



곽희수 대표는 건축가의 시선에서 카페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꺼내든 단어가 ‘환대’다.

“사실 커피는 어디서나 마셔도 되지만, 카페라는 공간은 단순히 ‘커피나 음료’를 나눠 마시는 게 전부가 아닌 곳입니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커피를 통해 환대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이유를 들으니 더 궁금해지는 곳, 주말이면 커피 향 가득한 그 공간에서 커피와 건축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시작은 글의 출발점인 스타벅스의 장충라운지R점이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