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용계은행나무와 지례예술촌안동 길안면 임하호 호숫가의 용계은행나무. 수몰 위기에 처한 700년 거목을 제자리에서 15m 들어올려 살렸다.흔히 안동을 ‘양반고을’이라 칭한다.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의연함을 높이 사는 동시에, 시대와 동떨어진 옛 풍습을 고집한다는 비아냥이 섞인 것도 사실이다. 길안면 용계은행나무와 임하면 지례예술촌을 보면 안동 사람이 고집스럽게 지키려 한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짐작할 수 있다. 기품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안동 길안면에서 임동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차를 몰다 산자락 하나를 넘으면 임하댐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가 시작되는 들머리에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주변 땅을 둥글게 고르고 가장자리로 단풍나무를 심어 작은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깊은 산중 호숫가에 나 홀로 고고한데,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깊이 있는 가을 정취를 선사한다. 수령 700년으로 추정되는 용계은행나무는 조선 시대부터 각별한 대접을 받아 온 보호수다. 선조 때 훈련대장을 지낸 탁순창이 서울에서 낙향해 뜻 맞는 사람들과 계(契)를 만들어 보살피고, 매년 7월 나무 밑에 모여 친목을 도모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주민 화합의 상징물이었다. 수직 이식한 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용계은행나무는 아직도 H빔과 지지대로 중심을 잡고 있다.용계은행나무 주변은 인공섬을 만들어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길손들에게 깊은 가을 정취를 선사한다.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 용계국민학교 운동장에 있던 이 은행나무는 임하댐(1990년 완공)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지만 주민과 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고사를 면했다. 학교는 물속으로 사라졌지만 나무는 그 자리에서 15m 들어올려 되살렸다.1990년 11월부터 1993년 2월까지 2년 넘는 기간 H빔을 대고 유압기기로 조금씩 올렸다고 한다.조심스럽게 공사를 진행했지만어쩔 수 없이 뿌리와 가지 일부는 잘려 나갔다. 현재도 중앙 지지대와 밑동의 H빔을 쇠줄로 연결해 중심을 잡고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키 31m, 가슴높이 둘레 13m에 달하는 풍모는 경외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주변까지 온통 노랗게 물들인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선사하는 기쁨이 크다. 용계은행나무에서 약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례예술촌 역시 양반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고택이다. 지촌종택, 지촌제청, 지산서당 등 460년 된 건물을 포함한 이 고택 단지도 임하댐으로 수몰된 지촌마을에서 이전했다. 안동 임동면 임하호 호숫가 산자락에 위치한 지례예술촌. 물에 잠긴 마을의 뒷산으로 옮긴 의성 김씨 고택이다.지촌마을은 1975년에야 전기가 들어오고 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첩첩산중 오지였다. 댐 계획이 발표되자 의성 김씨 지촌문중 소유의 고택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받아 1986~1989년 마을 뒷산 중턱으로 옮겨 ‘지례예술촌’을 열었다. 50여 가구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종손인 김원길씨만 남아 고택을 한국 최초의 문화예술촌으로 가꿨다. 현재는 아들 수형씨가 2대 촌장의 맥을 잇고 있다. 주변이 물에 잠겼으니 지례예술촌은 예전의 지촌마을보다 더 외진 형국이다. 일반 도로에서 호숫가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4㎞나 들어가야 나온다. 입구에 딱 한 채를 빼면 주변에 민가가 전혀 없다. 오로지 이 고택만이 호숫가 산자락을 지키고 있다. 아쉽게도 지례예술촌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일반 관광지는 아니다. 무작정 찾아 오는 여행객 때문에 최근에는 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했다. 오직 투숙객에게만 허락된, 요즘 홍보 문구를 빌리면 ‘프라이빗’하면서도 ‘유니크’한 한옥 숙소다. 그런데 고급스러움을 누리는 격이 다르다. 홈페이지의 소개 글은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 평화로움과 고요함, 그리고 예스러움입니다’로 시작한다. 방에는 TV도 시계도 주방시설도 없다. 대자연 속 낭만인 바비큐도 금지, 식사는 숙소에서 제공한다. 이래저래 불편한데, 이미 내년까지 예약이 거의 찬 상태다. 특히 방문을 열면 호수가 펼쳐지는 행랑채가 인기다. 지례예술촌 행랑채 대문 앞으로 임하호와 가을 색이 오르는 맞은편 산자락이 펼쳐진다.지례예술촌은 투숙객만 들어갈 수 있는 한옥 숙소다.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 오히려 누릴 게 많은 곳이다.지례예술촌 산책로 곳곳에 그 풍경에 어울리는 시판이 세워져 있다.편의시설이 없으니 누릴 게 많다. 정지된 시간과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느껴보기, 그냥 마루 끝에 앉아서 새소리와 벌레소리 듣기, 푸른 산과 호수를 마냥 바라보기, 물안개·소나기·눈보라 감상하기, 밤하늘 은하수 보기, 칠흑 같은 어둠 체험하기 외에 책 읽기, 산책하기, 낮잠 즐기기 등이 지례예술촌이 추천하는 여가 활동이다. 물속에서 건져 올린 건 고택이 아니라, 어쩌면아주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