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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내가 2009년 7월에 대한민국 경기도 이천에서 오아시스 공연 본 얘기 해줄까?
아, 미안…. 솔직히 털어놓을게. 공연 제대로 못 봤거든.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안 본 게 맞을 거야.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었지. 오아시스가 헤드라이너로 나온 7월 26일 일요일은 좋은 날이었어. 낮에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 패티 스미스까지는 맨정신으로 잘 봤다고. 문제는 낮부터 마셔댄 몇 잔의 맥주였지. 하늘이 어두워지고 오아시스가 무대에 오를 때쯤엔 피로와 숙취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게다가 오아시스의 앞선 내한 공연 두 번을 모두 본 상태였기 때문에 딱히 관심도 지대하마이웨이스탁
지 않았어. ‘리엄 형, 또 열중쉬어 자세로 정지화면 비슷하게 몇 곡 부르다 가겠지, 뭐.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또 올 테고. 자, 남은 음료수나 해치우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거의 무대를 등진 채 일행과 축제의 마지막 여흥을 즐기기에 바빴지. 미안…. 오아시스에게 미안. 오아시스 한 번도 못 본 사람들에게,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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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공연, 진짜 재미없어. 진짜야. 당신이 멜로디를 따라 부르지 않는다면. ⓒ찬란


실은 얼마 전에 또 한 번의 ‘만행’을 저질렀지. 이번 오아시스 재결합 투어의 영국 맨체스터와 런던 공연의 티켓을 구해뒀는데, 못 갔어. 이런저런 일이 있다는 핑계로,상한가주
돈을 쓸 시간에 돈을 벌자는 프리랜서의 결기로, 또 여러 가지 이유로 불과 한 달 정도를 앞두고 영국행을 포기했지.
그러고 나서 영화 ‘슈퍼소닉’을 뒤늦게 보게 된 거야. 오아시스의 결성 이전부터 역사적인 1996년 넵워스 공연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2016년 다큐멘터리 영화. 이번에 4K 리마스터를 거쳐 더 좋은 화질과 음질로 재개봉했오션파라다이스7
지.



멤버가 이렇게 많아도 잡지 표지와 공식 프로필엔 대개 두 명만 나온다는, 오만함. ⓒ찬란


몇 년 전, 싱어송라이터 백예린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게 생각나. 데뷔 초기엔 R&B 팝 디바 이미지였잖아. 그러던 ck트레이더
그로 하여금 록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게 바로 이 영화, ‘슈퍼소닉’이라는 거야. 당시 친하게 지내던 밴드 바이 바이 배드맨 멤버들과 함께 이 작품을 보고는 로커들의 자유분방한 플렉스에 빠져버렸다고…. 하긴, 어린 나이부터 대형 연예기획사에 들어가서 많은 날을 보내면서 자유롭지 못했던 부분도 적지 않았을 것 같아. 그러다 저 리엄과 노엘의 거친 태도와 뒤로 빼지 않는 언어들을 들었을 때 느꼈을 대리만족, 쾌감이 어땠을지도 상상이 가네.



열중쉬어도 무대 매너라면, 이 사람이 최고야. ⓒ찬란


‘슈퍼소닉’은 아시다시피 오아시스의 데뷔 싱글 제목(‘Supersonic’)과 같아.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 ‘Whatever’ ‘Live Forever’…. 영화 제목 하면 딱 좋을 만한 수많은 히트곡이 있는데 왜 하필 ‘Supersonic’을 택한 걸까? 그건 나도 몰라. 오아시스는 알겠지. 추측해 볼 순 있겠지.
‘I need to be myself/I can't be no one else’
이게 ‘Supersonic’의 가사 첫 줄이야. ‘난 나여야만 하고, 다른 사람이 될 순 없다.’ 의미심장하지. 리엄과 노엘이 두 시간 동안 지껄이는 말 되는 얘기, 안 되는 얘기, 멋진 짓, 엉망인 행동을 한 줄로 요약하면 아마 저 두 문장이 될지도 모르겠어.
‘난 나여야만 하고, 다른 사람이 될 순 없다.’



기타 실력 못잖게 보컬도 괜찮아. ⓒ찬란


브릿팝 4대 천왕 들어봤어? 오아시스, 블러, 펄프, 스웨이드. 브릿팝 전성기에 가장 인기 있었던 네 개의 그룹을 가리키는 말. 오아시스가 가시적으로는 (특히 상업적으로) 가장 빛나는 성과를 거뒀지만, 많은 음악 팬과 평론가들이 저 중에 가사를 제일 못 쓰는 그룹으로 오아시스를 꼽아. 노엘도 여러 번 자인했듯, 여러 가사가 단순히 각운(rhyme)을 맞추는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연결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더 시적이고 열린 해석을 가능케 하기에 좋다고 말하기도 하지. 하긴, 아마 어떤 더 형편 없는 가사라도 저 대단한 멜로디에 얹히면 훌륭하게 들릴 거라고. 내가 오늘 지하철을 탔다가 기후동행카드를 잘못 찍어서 추가 요금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오아시스가 노래로 만든다면 걸작이 될 거라고.



제아무리 스타디움 밴드라도 시작은 이렇다고. ⓒ


10월 오아시스 내한공연 보러 가? 그날 날씨가 어떨지 몰라도 아마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는 별이 뜰 거야. 총총히 아주 많이 뜰 거라고. ‘Some Might Say’ ‘Supersonic’ ‘Talk Tonight’ ‘Little by Little’ ‘Stand by Me’ ‘Cast No Shadow’ ‘Whatever’ ‘Live Forever’ ‘Rock ’n’ Roll Star’ ‘The Masterplan’ ‘Don’t Look Back in Anger’ ‘Wonderwall’, 그리고 ‘Champagne Supernova’까지.
참, 오아시스의 못 쓴 가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또 ‘Champagne Supernova’ 중에서 이거지.
‘Slowly walking down the hall/Faster than a cannonball’
포탄보다 더 빨리 천천히 복도를 걷는다는 게 도대체 뭔 소리야? 나도 몰라. 괜찮아. 작사가인 노엘도 모른다고 했어. 말이 안 돼도 공연에서 6만 명이 일제히 따라 부른다면 거기엔 뭔가가 있는 거라고.



꼭 이런 거창한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아. 공연 시켜놓고 보는 내가 왕이니까. ⓒ


‘인생 뭐 있어?’라고들 하지. 그러면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린 모두 분투하고 있어. 오아시스처럼 제멋대로 하면서도 인기를 얻으면, 말 안 되는 가사로도 명곡을 만들면 어떨까. 최고의 인생일까? 만약 그랬다면 저렇게 다시 뭉쳐서 굳이 세계를 돌고 있겠어? 저들도 여전히 뭔가를 찾고 있는 거야. 부족한 뭔가가 있는 거야. 인생은 그렇게 허무해. 우울과 공허는 삶의 세계를 빠르게 채워버리는 에테르 같은 거지.
그래도 이것만 기억해. 네가 느끼는 것, 네가 살아온 것은 저 밖에 수십억 명 중 누구도 똑같이 겪지 못한 귀한 무언가라는 것을. 그 사실만으로도 넌 빛나. 형편없는 가사 위에 얹힌 예쁜 멜로디처럼, 인생은 그렇게 가는 거야.
‘I need to be myself/I can't be no one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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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