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제공


2019년 1월23일 서울시청 앞에서 정반대 성격의 두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서울시는 박원순과 박은선의 관계를 밝혀라!” 맞은편의 구호가 박은선의 귀에 꽂혔다. 세운지구의 난폭한 재개발로 위태로워진 소상공인의 생존 대책을 두고 서울시와 세입자, 지주, 시민단체 등이 소통하는 것에 음모론을 들씌우려는 의도가 빤히 보였다. 대다수 지주와 머리를 맞대왔는데, ‘영세 토지주 모임’이라고 밝힌 그들은 재개발 시행사 직원만 빼면 모두 낯설었다. 박은선(사진)은 세운지구 막개발에 맞서온 청 황금성사이트 계천을지로보존연대의 활동가다. 이 일대 소상공인들의 생애사까지 꿸 정도인 그가 개발 세력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면 외려 이상할 터였다. 종묘 건너편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2025년 11월24일, 그를 만났다.
―세운지구와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내가 기획자로 있는 ‘리슨투더시티’(예 릴게임추천 술·디자인·도시·건축 분야 창작 그룹)가 2015년 을지로3가에 사무실을 내면서부터다. (그는 석사까지 미술을 전공하고, 다시 도시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놀라운 산업 생태계에 눈을 떴다.”
―세운지구 재개발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는데.
“제조·유통 업체가 밀집한 세운지구는 서울 시민들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에게 제공하는 공적 이익이 매우 큰 공간이다. 재개발하려면 공공이 주도하는 게 마땅한데, 민간업체들이 진행하다보니 특정 시행사가 막대한 이익을 봤다. 이 과정에 온갖 가혹한 수단이 동원됐다. 지금 ‘힐스테이트 세운’이 들어선 세운3구역은 토박이 지주들조차 울며 겨자 먹기로 땅을 넘기고 떠났다. 시행사인 한호건설은 소송을 걸어 40년 넘게 일해온 세입자들을 백경게임랜드 내쫓았다. 관리처분인가가 나오기 전부터 철거를 강행하고, 거의 모든 세입자에게 명도소송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 우리가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해, 법적 절차를 확인하지 않고 재개발을 승인해준 중구청 담당자들이 2021년 4월 파면, 해임, 강등 처분을 받기도 했다.”
―세운4구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반달리즘(훼손 행위) 논란에 릴게임 휩싸였다.
“이미 우리가 2000년, 2021년, 2023년 세 번에 걸쳐 유네스코에 진정을 넣었다. 언론보도도 크게 났다. 아이러니하게 그땐 침묵하던 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소극 대응하다 또다시 늑장이다. 서울시청사 철거를 용인했던 과거가 되풀이되고 있다. 정치 환경이 변한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이제라도 초지일관하기 바란다.”
―논란이 한호건설에 대한 개발이익 몰아주기 의혹으로까지 비화했다.
“세운3구역 때와 개발 방식은 다르지만, 한겨레21 보도를 보니 한호건설이 천문학적 개발이익을 가져간다는 면에서는 다를 게 없더라. 서울시가 용적률을 올려주며 개발이익을 환수하겠다고 주장하는데, 신뢰하기 어렵다. 3구역 재개발 때도 세입자들에게 개발 전에 임시상가를 지어준다거나 산업특화상가 등을 짓는다고 해서 용적률을 300%나 더 받아냈지만,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오세훈 시장은 고층·고밀도 개발의 명분으로 ‘녹지생태도심 재창조’를 내세우고 있다.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보다 악랄한 그린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이다. 나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에 앞서 4대강과 내성천 지키기 운동을 했다. 자연 생태 파괴와 도시 생태 파괴는 연결돼 있더라. 결국 사람을 파괴하고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조선 왕들의 사당도 망가뜨리려는 마당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야 말해 무엇하겠나.”
―오 시장은 개발과 지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압도적인 욕망을 파고드는 게 아닐까.
“쉬지 않고 아파트를 공급했는데도 자가 보유율은 외려 낮아졌다. 소유로는 절대 풀 수 없는 문제다.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이 될 뿐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은 사회적 주택 비율도 가장 높다. 우리 사회가 대안적 상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겨레21에 전하고픈 애정 어린 바람이 있다면.
“심층적이고 수준 높은 기사들을 늘 고맙게 생각한다. 지금 미디어 보도가 재난 구호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데, 국내 언론 전반에서 탐사보도와 연속보도의 부족함이 두드러지더라. 재난이나 사회적 난제는 이슈가 공론화된 뒤 더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겨레21이 연속성 있는 보도, 체계적인 후속 보도의 강점을 계속 키워가기 바란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