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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해안의 작은 마을 볼게리. 한 80대 노인이 지중해 바람이 불어오는 포도밭을 하릴없이 거닙니다. 어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미술관의 통로를 지나며 봤을법한 벽에 걸린 유화 속 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죠.
하지만 곧 노인이 다리를 굽히고 허리를 숙여 흙을 집어들더니 한참을 들여다보자 현장에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한 마디는 “여기에 메를로를 심으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용히 그의 옆을 지키던 30대 남성의 행동이 분주해집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전세계 와인 애호가가 사랑하는 슈퍼투스칸(Sup 릴게임바다이야기 erTuscan) 중 하나인 오르넬라이아(Ornellaia)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노인의 이름은 안드레 첼리스체프(Andre Tchelistcheff), 미국 나파밸리의 선구자이자 미국 와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 보리우(Beaulieu Vineyard)를 비롯한 수많은 명품 와이너리를 탄생시킨 전설이었습니다. (안드레 첼리스체프와 릴게임한국 보리우 빈야드 이야기는 <“세계 주무르는 남자들이 즐겼다는데”…금주법도 이겨내더니 美 자부심 됐다>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오르넬라이아 와이너리 풍경. [출처=ornella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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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형난제, 새 물결을 창조하다
안드레의 옆을 지키던 30대 사내는 누구였을까요? 전통의 와인 양조 가문 안티노리(Antinori)의 로도비코 안티노리(Lodovico Antinori)로, 이쪽도 명함만 놓고보면 안드레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안티노리 가문은 1385년부터 이어져 온 이탈리아 최고의 백경게임 와인 명가입니다.
26대를 이어온 이 가문에서 로도비코는 형 피에로(Piero)와 함께 자랐습니다. 형 피에로는 가문의 본거지인 키안티에서티냐넬로(Tignanello)라는 혁명적인 와인을 만들어 이미 슈퍼투스칸 운동의 주역으로 역사에 이름이 새겨졌죠.
로도비코는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와인을 만 바다이야기무료 들기로 결심했습니다. 키안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산지오베제(Sangiovese)가 아닌 다른 품종으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안티노리 형제가 아닌 로도비코로 역사에 남고 싶었던 것이죠. 그렇게 운명은 그를 볼게리라는 키안티 서쪽의 작은 해안 지역으로 끌어당깁니다.
당시 볼게리가 아예 이름이 없던 곳은 아닙니다. 슈퍼투스칸의 시작으로 불리는 사시까이아(Sassicaia)가 볼게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보다 10여년 앞선 1968년, 이미 첫 상업 빈티지를 출시한 사시카이아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상태였습니다. 사시까이아의 성공을 지켜보며 ‘이 땅에는 분명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확신한 겁니다.
그는 볼게리의 바다가 보이는 숲을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숲엔 물푸레나무(Ornello)가 무성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와이너리의 이름이 정해집니다. 오르넬라이아(Ornellaia), 물푸레나무가 있는 곳이란 뜻입니다.
로도비코 안티노리. [출처=Tenuta del Nicchio]
전설의 양조학자가 발견한 ‘푸른 점토’
로도비코의 앞길은 험난함이 예고된 길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시까이아를 모방해 그럴싸한 와인을 만들어 봤자, 가문의 역사와 자본을 가지고 사시까이아의 모방품을 만든다는 비판만 받을 게 뻔했죠. 결국 그는 오르넬라이아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원했고 당대 최고의 양조학자들을 초빙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안드레 첼리스체프였고, 서두의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그는 포도밭을 천천히 걸으며 흙을 만졌습니다. 그리고 한 구역에 멈춰 섰습니다. 손에 쥔 흙은 푸르스름한 빛을 띤 점토였습니다.
이 푸른 점토(Blue Clay)는 프랑스 보르도 포므롤의 샤또 페트뤼스(Chateau Petrus)가 가진 것과 유사한 플라이오세 시대(Pliocene Epoch·약 500만 년 전부터 250만 년 전까지의 시대)의 점토층으로, 메를로에게 최적의 토양이었습니다.
그렇게 심어진 메를로는 훗날 마세토(Masseto)라는 이름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중 하나가 됩니다. 한 병에 현지가로 700달러(약 98만원)가 넘는 와인이죠. 마세토의 이름은 이탈리아어 ‘Massi(덩어리)’에서 왔습니다.
그 구역의 흙이 마치 돌덩어리처럼 단단한 점토였기 때문입니다. 첫 빈티지는 1986년이었고, 처음에는 오르넬라이아의 블렌딩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품질이 너무 뛰어나 1987년부터 독립적인 와인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오르넬라이아 와이너리 지도. [출처=vintusny.com]
보르도 스타일로 만들어진 우아함
1985년 봄, 드디어 오르넬라이아의 첫 빈티지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까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이 블렌딩된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와인 시장은 여전히 전통적인 산지오베제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법상 테이블 와인(등급 분류 가장 하단)으로 분류됐고, 많은 콧대 높은 비평가들은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잃은 와인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러나 로도비코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르넬라이아가 단순히 보르도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볼게리라는 특별한 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창적인 와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르넬라이아는 보르도와는 달랐습니다. 지중해에서 불과 3~5㎞ 떨어진 해안 지대. 바다가 만들어내는 온화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 그리고 푸른 점토라 불린 토양은 포도에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했습니다. 보르도의 강건함보다는 부르고뉴의 우아함에 가까운 스타일이었습니다.
또 다른 거장의 합류, 오르넬라이아를 완성하다
1991년, 오르넬라이아에 또 한 명의 거장이 합류합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컨설턴트 양조자, 미셸 롤랑(Michel Rolland)입니다.
미셸 롤랑은 보르도 포므롤에서 태어나 자란 양조학자로, 전 세계 100곳 이상의 와이너리를 컨설팅하며 ‘와인의 마이더스’라 불립니다. 그가 손대는 와인은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데, ‘풍요로운 과실미, 부드러운 타닌, 오크의 적절한 사용’을 내세운 그의 양조 철학은 현재까지 통용됩니다.
롤랑은 오르넬라이아의 잠재력을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조언했습니다. 첫째, 각 구획을 더 세밀하게 나누고 개별 양조를 강화할 것. 둘째, 수확 시기를 최적화하여 산도와 당도의 균형을 맞출 것.
롤랑의 조언에 따라 현재까지 오르넬라이아는 전체 구역을 약 70여개의 구획(플롯·plot)으로 쪼개고, 이 밭에서 80여개의 베이스 와인(로트·Lot)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중 30여개의 와인을 선별해 이를 블랜딩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플롯과 로트의 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한 플롯에서 품종·수확일·선별 기준이 갈리면 로트가 나뉘기 때문입니다.
미셸 롤랑은 1991년부터 현재까지 35년 간 오르넬라이아의 컨설턴트로 활동했습니다. 연간 3차례 방문하며 블렌딩 과정에 참여하는데, 스스로를 ‘오르넬라이아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이라고 농담한다고 합니다.
미쉘 롤랑(좌)과 로도비코 안티노리(우)의 모습. [출처=lodovicowine.it]
소유주는 바뀌어도,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1999년, 로도비코 안티노리는 미국의 거대 와인 회사 몬다비(Mondavi)에 오르넬라이아의 지분 일부를 팔았습니다. 2002년, 몬다비는 나머지 지분까지 인수하며 오르넬라이아의 완전한 소유주가 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명문 가문,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에게 50%를 다시 매각했습니다.
프레스코발디 가문은 안티노리와 함께 1300년경부터 피렌체에서 와인을 만들어온 700년 역사의 명가입니다. 30대째 이어오고 있고, 은행업과 정치로 부를 쌓아 토스카나 전역에 여러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프레스코발디 가문은 2005년 남은 50% 지분을 사들여 오르넬라이아의 완전한 소유주가 됐습니다.
미셸 롤랑의 합류 이후 세계 시장에서 5대 슈퍼투스칸으로 불리며 호평 받는 오르넬라이아는 현재까지 최고의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변하지 않는 와인의 스타일과 품질 때문인데요. 소유주가 3번 바뀌는동안에도 한번도 바뀌지 않은 오르넬라이아의 철학엔 어떤 비밀이 숨겨져있을까요? 다음주 와인프릭에서 이어집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하지만 곧 노인이 다리를 굽히고 허리를 숙여 흙을 집어들더니 한참을 들여다보자 현장에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한 마디는 “여기에 메를로를 심으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용히 그의 옆을 지키던 30대 남성의 행동이 분주해집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전세계 와인 애호가가 사랑하는 슈퍼투스칸(Sup 릴게임바다이야기 erTuscan) 중 하나인 오르넬라이아(Ornellaia)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노인의 이름은 안드레 첼리스체프(Andre Tchelistcheff), 미국 나파밸리의 선구자이자 미국 와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 보리우(Beaulieu Vineyard)를 비롯한 수많은 명품 와이너리를 탄생시킨 전설이었습니다. (안드레 첼리스체프와 릴게임한국 보리우 빈야드 이야기는 <“세계 주무르는 남자들이 즐겼다는데”…금주법도 이겨내더니 美 자부심 됐다>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오르넬라이아 와이너리 풍경. [출처=ornella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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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형난제, 새 물결을 창조하다
안드레의 옆을 지키던 30대 사내는 누구였을까요? 전통의 와인 양조 가문 안티노리(Antinori)의 로도비코 안티노리(Lodovico Antinori)로, 이쪽도 명함만 놓고보면 안드레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안티노리 가문은 1385년부터 이어져 온 이탈리아 최고의 백경게임 와인 명가입니다.
26대를 이어온 이 가문에서 로도비코는 형 피에로(Piero)와 함께 자랐습니다. 형 피에로는 가문의 본거지인 키안티에서티냐넬로(Tignanello)라는 혁명적인 와인을 만들어 이미 슈퍼투스칸 운동의 주역으로 역사에 이름이 새겨졌죠.
로도비코는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와인을 만 바다이야기무료 들기로 결심했습니다. 키안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산지오베제(Sangiovese)가 아닌 다른 품종으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안티노리 형제가 아닌 로도비코로 역사에 남고 싶었던 것이죠. 그렇게 운명은 그를 볼게리라는 키안티 서쪽의 작은 해안 지역으로 끌어당깁니다.
당시 볼게리가 아예 이름이 없던 곳은 아닙니다. 슈퍼투스칸의 시작으로 불리는 사시까이아(Sassicaia)가 볼게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보다 10여년 앞선 1968년, 이미 첫 상업 빈티지를 출시한 사시카이아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상태였습니다. 사시까이아의 성공을 지켜보며 ‘이 땅에는 분명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확신한 겁니다.
그는 볼게리의 바다가 보이는 숲을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숲엔 물푸레나무(Ornello)가 무성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와이너리의 이름이 정해집니다. 오르넬라이아(Ornellaia), 물푸레나무가 있는 곳이란 뜻입니다.
로도비코 안티노리. [출처=Tenuta del Nicchio]
전설의 양조학자가 발견한 ‘푸른 점토’
로도비코의 앞길은 험난함이 예고된 길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시까이아를 모방해 그럴싸한 와인을 만들어 봤자, 가문의 역사와 자본을 가지고 사시까이아의 모방품을 만든다는 비판만 받을 게 뻔했죠. 결국 그는 오르넬라이아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원했고 당대 최고의 양조학자들을 초빙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안드레 첼리스체프였고, 서두의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그는 포도밭을 천천히 걸으며 흙을 만졌습니다. 그리고 한 구역에 멈춰 섰습니다. 손에 쥔 흙은 푸르스름한 빛을 띤 점토였습니다.
이 푸른 점토(Blue Clay)는 프랑스 보르도 포므롤의 샤또 페트뤼스(Chateau Petrus)가 가진 것과 유사한 플라이오세 시대(Pliocene Epoch·약 500만 년 전부터 250만 년 전까지의 시대)의 점토층으로, 메를로에게 최적의 토양이었습니다.
그렇게 심어진 메를로는 훗날 마세토(Masseto)라는 이름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중 하나가 됩니다. 한 병에 현지가로 700달러(약 98만원)가 넘는 와인이죠. 마세토의 이름은 이탈리아어 ‘Massi(덩어리)’에서 왔습니다.
그 구역의 흙이 마치 돌덩어리처럼 단단한 점토였기 때문입니다. 첫 빈티지는 1986년이었고, 처음에는 오르넬라이아의 블렌딩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품질이 너무 뛰어나 1987년부터 독립적인 와인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오르넬라이아 와이너리 지도. [출처=vintusny.com]
보르도 스타일로 만들어진 우아함
1985년 봄, 드디어 오르넬라이아의 첫 빈티지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까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이 블렌딩된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와인 시장은 여전히 전통적인 산지오베제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법상 테이블 와인(등급 분류 가장 하단)으로 분류됐고, 많은 콧대 높은 비평가들은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잃은 와인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러나 로도비코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르넬라이아가 단순히 보르도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볼게리라는 특별한 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창적인 와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르넬라이아는 보르도와는 달랐습니다. 지중해에서 불과 3~5㎞ 떨어진 해안 지대. 바다가 만들어내는 온화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 그리고 푸른 점토라 불린 토양은 포도에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했습니다. 보르도의 강건함보다는 부르고뉴의 우아함에 가까운 스타일이었습니다.
또 다른 거장의 합류, 오르넬라이아를 완성하다
1991년, 오르넬라이아에 또 한 명의 거장이 합류합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컨설턴트 양조자, 미셸 롤랑(Michel Rolland)입니다.
미셸 롤랑은 보르도 포므롤에서 태어나 자란 양조학자로, 전 세계 100곳 이상의 와이너리를 컨설팅하며 ‘와인의 마이더스’라 불립니다. 그가 손대는 와인은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데, ‘풍요로운 과실미, 부드러운 타닌, 오크의 적절한 사용’을 내세운 그의 양조 철학은 현재까지 통용됩니다.
롤랑은 오르넬라이아의 잠재력을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조언했습니다. 첫째, 각 구획을 더 세밀하게 나누고 개별 양조를 강화할 것. 둘째, 수확 시기를 최적화하여 산도와 당도의 균형을 맞출 것.
롤랑의 조언에 따라 현재까지 오르넬라이아는 전체 구역을 약 70여개의 구획(플롯·plot)으로 쪼개고, 이 밭에서 80여개의 베이스 와인(로트·Lot)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중 30여개의 와인을 선별해 이를 블랜딩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플롯과 로트의 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한 플롯에서 품종·수확일·선별 기준이 갈리면 로트가 나뉘기 때문입니다.
미셸 롤랑은 1991년부터 현재까지 35년 간 오르넬라이아의 컨설턴트로 활동했습니다. 연간 3차례 방문하며 블렌딩 과정에 참여하는데, 스스로를 ‘오르넬라이아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이라고 농담한다고 합니다.
미쉘 롤랑(좌)과 로도비코 안티노리(우)의 모습. [출처=lodovicowine.it]
소유주는 바뀌어도,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1999년, 로도비코 안티노리는 미국의 거대 와인 회사 몬다비(Mondavi)에 오르넬라이아의 지분 일부를 팔았습니다. 2002년, 몬다비는 나머지 지분까지 인수하며 오르넬라이아의 완전한 소유주가 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명문 가문,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에게 50%를 다시 매각했습니다.
프레스코발디 가문은 안티노리와 함께 1300년경부터 피렌체에서 와인을 만들어온 700년 역사의 명가입니다. 30대째 이어오고 있고, 은행업과 정치로 부를 쌓아 토스카나 전역에 여러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프레스코발디 가문은 2005년 남은 50% 지분을 사들여 오르넬라이아의 완전한 소유주가 됐습니다.
미셸 롤랑의 합류 이후 세계 시장에서 5대 슈퍼투스칸으로 불리며 호평 받는 오르넬라이아는 현재까지 최고의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변하지 않는 와인의 스타일과 품질 때문인데요. 소유주가 3번 바뀌는동안에도 한번도 바뀌지 않은 오르넬라이아의 철학엔 어떤 비밀이 숨겨져있을까요? 다음주 와인프릭에서 이어집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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